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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쉼터]사천 자혜리 바닷가

마음 속 묵은 짐 갯바람에 훨~훨~

정리/김훤주 기자 pole@dominilbo.com 2001년 05월 16일 수요일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고 있다. 문득 시원한 바닷바람이나 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 한적한 포구가 없나 지도로 찾아보지만 마땅하지 않다.

사천시 서포면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앞에는 날아가는 토끼 같은 비토(飛兎)섬이, 그 너머로는 멀리 남해섬이 떠 있다. 비토섬 맞은편에는 삼천포항이 보인다.

사천은 역사가 오랜 땅이다. 삼한시대에는 포상팔국(浦上八國-남해안 일대에 항구 모양으로 있던 여덟 부족국가)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으로 독자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통일신라 때는 사수현(泗水縣)이라 했다.

고려 초기인 성종 11년(992년)에는 왕건의 아들인 안종(현종의 아버지)이 여기서 귀양살이를 했고 덕분에 현종이 왕이 된 뒤(1011년)에는 몇 단계나 승격된 사주(泗州)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때(1413년)는 이름이 지나치다 해서 주(州)에서 수(水)를 뺀 천(川)으로 한 계단 깎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다.

한편으로 사천은 예부터 오랫동안 왜구를 비롯한 해적들의 시달림을 받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 말기, 사천 사람들이 당대에 미륵부처가 와서 구제해 주기를 기원하며 침향(沈香)을 묻고 비석을 세운 것도 왜구의 침략으로 살기 어려웠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실전에 써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사천해전이 있었던 곳으로 적혀 있다. 이순신 장군은 5월 29일 사천 선창에 있던 왜군을 바깥으로 꾀어낸 뒤 단숨에 쳐서 모조리 없앴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는 왜군의 근거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조선 사람은 씨가 말랐고, 왜군의 세력이 강성해 1598년 철수할 때에도 조.명 연합군은 사천 선진리성에 버티고 있던 왜군의 도망길을 잘라내지 못했다. 조선 조정은 왜란으로 무인지경이 돼 버린 사천에다 사람들을 강제로 옮겨 심었다. 사천 땅에 들어가 사는 조건으로 죄인들의 죄를 방면해 준 것이다.

서포면 일대는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답답한 주말이나 휴일, 식구들끼리 도시락 싸들고 물 한 통 짐칸에 싣고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아스팔트 좁은 길 양쪽으로는 점점 짙어지는 벚나무들의 새잎이 새롭고,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도 느릿느릿 여유롭다.

모퉁이마다 굽이마다 나타나는 바닷가 풍경은 아이들 입에서 낮은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드문드문 떠 있는 섬들, 나지막하게 갯바위를 핥아대는 하얀 파도, 사람들은 무언가 찾으려는 듯 둘씩 셋씩 쪼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찾아간 어촌 마을은 조용하지 않다. 별의별 이름을 갖다 붙인 횟집들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함께 놀러 온 듯한 부부 두 쌍은 평상에 둘러앉아 화투짝을 두드린다. 위쪽의 △△횟집에는 뽕짝 가락으로 미뤄 50대쯤 된 아줌마.아저씨들이 판을 벌린 듯하고, 동요 가락이 흐르는 xxxx횟집에는 막간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긴 듯 40대 안팎일 것 같다.

포장된 길 끝에 붙어 있는 서포면 자혜리 중촌 마을.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마자 마을 들머리 횟집 못미쳐 차를 세워놓고 느릿느릿 고깃배 대는 부두로 걸어간다. 조그만 통통 고깃배 예닐곱 척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바람은 시원하고 남해와 삼천포로 둘러싸인 호수 같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짐칸에 낚싯대가 있으면 꺼내어 던져봐도 좋으리라.

하지만 참맛은 마을 들머리에서 왼쪽으로 펼쳐진 갯바위로 나가는 데 있다. 험하지도 않은 편평한 바위가 쭉 잇대어 펼쳐져 있는데, 이 곳 게들은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아서인지 재빠르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냥 바위를 들어내고 통에다 담으면 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솔밭 우거진 바닷가가 건너편에 아담하다. 뒤로는 2004년 완공 예정으로 삼천포항과 구포마을을 잇는 다리공사가 한창이고….

바닷가에 와서 ‘고기’를 구워먹는 부부를 보았다. 아이 둘은 갯바위에서 옷을 적셔가며 놀고 있다. 마음껏 편한 자세를 잡고, 솔 그늘 아래 휴대용 탁자 세트를 펼쳐 놓고 있다. 여인은 신문을 보고 남편은 아이들 그림책을 보고 있다.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물고기를 좀 사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횟집에 가 갖은 양념에 회 썬 고기를 장만해 갈지도 모른다. 노래방 연주기로 떠들썩한 횟집에서는 오붓한 시간을 내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찾아가는 길

마산.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축동.가산IC를 지나 곤양IC에서 빠지면 된다. 통행료를 치른 다음 바로 나오는 신호등에서 왼쪽으로 10~15분 계속 달리면 서포면사무소가 있는 구평리에 이른다.

면사무소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비토섬으로 가는 길이 되고, 그대로 곧장 나가면 자혜리 바닷가로 갈 수 있다. 자혜리 바닷가 마을로는 구포와 중촌이 있는데 먼저 나오는 게 구포고 포장된 길 끝에 달려 있는 게 중촌 마을이다.

드라이브를 할라치면 비토섬을 먼저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좋다. 그런 다음 자혜리 쪽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고즈넉하게 식구들끼리 쉬면 좋다. 물론 찾기 전에 물때를 알아보고 썰물 때를 맞춰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마산 남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삼천포행 버스를 타고 사천읍 터미널에서 내린다. 다음 서포까지는 시내버스나 택시를 타면 된다. 면사무소 소재지에서도 택시를 탈 수 있다. 마산에서 사천 가는 버스는 오전 6시10분을 첫차로 해서 30~40분 간격으로 오후 8시 30분까지 이어진다.

바닷가에 온 만큼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단출하게 도시락을 싸도 좋지만 어디서나 마주치는 횟집에서 회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 한 잔 곁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음주 운전. 술 깰 때까지 아이들 손잡고 갯가를 천천히 거닐면 되겠다.



낚시가 하고 싶어질 때 해동낚시(전화 (055) 854-1278)를 비롯한 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낚시점을 찾아가면 된다. 낚시에 필요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필요한 장비와 부품을 장만할 수도 있다.

△가볼만한 곳

사천은 바닷가 지역이어서 자고로 왜구의 침탈이 심했다. 불교가 성하던 고려 때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이 크게 번진 것은 당연했다. 고려 말기 우왕 13년(1387년) 스님과 신도 4100여 명이 바닷가 갯벌에 모여서 크게 행사를 벌이고 침향을 묻었다(埋香).

미륵이 와서 새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민중의 염원을 글로 새겨 놓은 것이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들판 산기슭에 있는 보물 614호 사천매향비다. 지금은 사람들이 주차할만한 데를 만드는 공사라도 벌이고 있는지, 안내판도 자빠져 있고 돋워 놓은 흙도 그대로 먼지만 날리고 있다.

202자가 새겨진 매향비문을 읽어보려는 노력은 전문가가 아니면 부질없는 짓이다. 세월이 오래돼 글자가 흐리기 때문이다. 대신 안으로 지배집단의 무능과 밖으로 왜구 침탈에 시달리던 백성 4100여 명이 갯벌에 모여 집단 제의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절실함이 오늘날은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헤아려 보는 것으로 족하다.

서포에서 나오는 길에 들르면 된다. 곤양IC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지 말고 곤양으로 빠졌다가 1002번 지방도를 따라 사천쪽으로 달려야 한다. 10여 분 가다보면 수곡.곤명으로 가려면 좌회전하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 표지를 따라 굴다리를 지나 1.5km쯤 가면 다시 왼쪽 길섶에 나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다시 왼쪽으로 틀어 200m쯤 가면 나온다.

차가 굴러가는 길은 방죽 위로 나 있는데, 옛날 이렇게 간척하기 전에는 매향비가 있는 데까지 바닷물이 출렁이며 들어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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