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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쉼터]천주산 야간 산행

풀벌레소리 벗삼아 ‘무아지경’속으로

김훤주 기자 pole@dominilbo.com 2001년 06월 20일 수요일
눈에 보인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서도 딱 안 보았으면 싶은 게 없을 수 없다. 이를테면 우거진 수풀 가운데 버려진 소주병이라든지 가지에 걸려 바람에 날리지도 못하는 비닐봉지 따위들이다. 또는 산 중턱이나 아래턱 가릴 것 없이 뭉텅 잘라낸 임도의 시뻘건 황토들이 그것이다.
야간 산행을 하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서도 딱 안 보았으면 싶은 게 없을 수 없다. 이를테면 우거진 수풀 가운데 버려진 소주병이라든지 가지에 걸려 바람에 날리지도 못하는 비닐봉지 따위들이다. 또는 산 중턱이나 아래턱 가릴 것 없이 뭉텅 잘라낸 임도의 시뻘건 황토들이 그것이다.
야간 산행을 하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오후 9시. 어둠이 완전히 내렸다. 창원시 소계동에서 북면으로 이르는 도로 가운데 임시 개통된 구간을 따라 가다 굴현고개(175m) 천주사 입구에 닿았다. 한국산악회 경남지부(지부장 신재호)가 올들어 다섯 번째 마련한 야간 산행이다.
인원 점검. 먼저 와 있던 사람까지 모두 21명이다. 산행 지도는 서정욱 감사가 맡았다. 앞뒤 사람을 잘 챙길 것, 앞뒤 간격을 최대한 좁힐 것, 지도에 잘 따를 것, 선두는 처져서 오는 일행의 요구를 늘 신경 쓸 것 등 주의사항이 떨어진다.
천주사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다. 조금 더 위로 오르면 약수터가 나오는데 주변에는 이런저런 운동기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물통을 채울 겸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능선에 이른다. 세 갈래로 난 길인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천주봉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용지봉이 버티고 섰다.
참 이상한 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이 천주봉이 아니다. 동쪽의 484m 고지가 천주봉이고 서남쪽으로 솟은 639m 주봉은 이름이 용지봉이다. 또다시 북동쪽으로 봉우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상봉이라 한다. 여기가 가장 높은 곳으로 해발 649m다.
어쨌거나, 용지봉쪽 길을 잡아 오른다. 만약 햇볕 쨍쨍한 한낮에 올랐다면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나무그늘도 없고 길은 줄곧 오르막이다. 랜턴으로 발 밑만 비추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데, 때때로 비닐이나 휴지 조각 날리는 것이 불빛에 드러난다.
첫 번째 헬기장이 있는 산마루에서 다시 발길을 멈춘다. 밤중이라 그리 덥지 않은데다 불어오는 산바람이 너무 시원해 땀이 식으면서 소름이 돋는 게 느껴진다. 가져온 물과 사이다, 과일이랑 김밥을 다들 내놓고 나눠먹는다.
발아래로는 도시의 밤풍경이 펼쳐져 반짝이고 있다. “자, 아래를 보세요. 왼쪽이 창원이고 가운데 불이 없어 시커먼 데가 팔룡산입니다. 오른쪽 위 두산중공업 있는 데는 환하지만 아래는 불빛이 없지요. 마산 앞바답니다. 바다를 따라 아래로 길게 드러누운 듯이 뻗은 것이 마산 시가집니다.” 신재호 지부장의 설명은 그치지 않는다.
“창원은 계획도시라 불빛도 부처님 오신날 연등처럼 일정하게 빛나지요. 마산은 어떻습니까, 별을 한 움큼 집어다 뿌려 놓은 은하수처럼 부연 게 은근한 맛이 있습니다.” 일행들의 입에서 터지는 가벼운 탄성. 야간 산행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일행은 산마루를 떠나 용지봉에 올랐다. 밤사진을 찍고 마산 구암동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하지만 편하게 가려면 올라온 길을 되잡아 내려가면 된다. 줄곧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틀면 구암동 하이트맥주쪽으로 나오지만, 체력단련이 목적인 이들은 오른쪽 희미한 길을 잡아 더 멀리 걷는다. 합성동 제2금강산이란 데로 빠지는 길이다. 여기서 혜림학교를 거쳐 찻길까지 나오는 데 꼬박 3시간 30분이 걸렸다.



△야간산행 이런 것이 좋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야간 산행의 으뜸가는 미덕이다. 좋은 기분으로 산에 올랐는데 꼴사나운 모양을 본다면 기분을 잡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론 많이 보이지 않으니까 상상력이 움직이는 대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여름 산행의 강적은 피할 수 없는 더위. 내리쬐는 햇볕 아래 온몸을 드러내 놓고 산을 오르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밤중에 산을 찾으면 이를 피할 수 있다.
셋째, 가까운 산을 밤에 오르면 적어도 휴일의 반나절은 아낄 수 있다. 자정 전후에는 내려와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까, 일부러 날을 골라잡지 않아도 된다.
산행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3시간짜리는 2시간 30분으로 당길 수 있다. 왜냐면, ‘눈에 보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정상이 멀리 원경에 버티고 서서 “꼭대기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지롱” 하며 약을 올리지 못한다. 랜턴으로 발 밑이나 이리저리 가까운 데를 비춰 보면서 걸으면 되므로 체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피로감을 훨씬 덜 느낄 수밖에 없다. 밤이라는 조건 때문에 발길이 빨라지는데다 눈과 귀의 듣고 보는 감각 때문에 피곤해지는 정도가 덜하기 때문이다.
보름 어름에 하는 야간산행은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맑은 하늘 은은한 달빛 아래서는 웬만하면 랜턴조차 켜지 않아도 된다. 바위가 달빛을 되쏘는 가운데 호젓하게 산길을 거니는 기쁨이란 부부 동반으로, 아니면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손을 맞잡고 함께 할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같이 가는 일행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영화에서 사랑 고백을 왜 달빛 아래 하는지 알 수 있다), 쌓인 오해를 벗어던질 수도 있다. 어둠이 표정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자신의 표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서로 자기 기분대로 부담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면 된다. 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한 몫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야산산행 어디가 좋을까

야간 산행은 가까이 있으면서 만만한 산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 낯설고 험한 산을 밤에 올랐다가는 자칫 길을 잃거나 다치기 쉽다.
또 여러 번 올라봐서 등산길을 세세하게 잘 알고 있는 산이어야 한다. 산길이 숲으로 우거진 쪽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이 좋고, 시커먼 흙으로 뒤덮인 산보다는 바위로 이뤄진 산이 낫다. 훨씬 밝은데다 빛을 되쏘기 때문이다.
마산이라면 무학산이 적당할 것이고 창원은 비음산이나 대암산.봉림산이 다 좋겠다. 창녕읍내에 사는 사람은 화왕산을 올라도 좋고 김해서는 신어산도 되겠다. 진해는 천자봉이나 장복산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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