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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에 흐르는 기타 소리, 그건 선물이었어요

겁쟁이 시골 아줌마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10편

박미희 webmaster@idomin.com 2016년 02월 02일 화요일

◇6월 26일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까지 22㎞

카미노에서는 새벽 4시가 조금 넘으면 일어나게 되네요. 한국에선 새벽잠이 많아 힘이 드는데 여기선 새벽잠도 없어졌어요. 일찍 일어나서 어제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언니는 속이 안 좋다며 식사를 못하겠다더군요. 내가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먼저 출발을 하시라고 했어요. 혼자 걸어본 적이 별로 없어 좀 두렵긴 했지만 앞으로 전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언니는 8월 4일까지 걸을 계획이었고 전 7월 22일까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인 거죠. 언제 헤어지느냐가 문젠데 서로 말을 못하는 거예요.

출발을 해서 조금 가니 11세기에 지어졌다는 다리가 나타났어요. 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왕비의 다리(푸엔테 라 레이나)'라는 이름이 그대로 도시 이름이 된 거죠.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과 새벽의 푸른빛이 다리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었지요. 엊저녁 더위 때문에 환할 때 와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더라고요.

에스테야에서 만난 아이들. 천진난만한 웃음이 보는 이도 저절로 웃음 짓게 한다.

오늘 처음으로 혼자 출발하는 길, 두렵지만 혼자 해 내야 하는 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새벽이었어요.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고 길을 제대로 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보니 화살표도 보이지를 않네요. 새벽이라서 사람도 안보이고 얼른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얼마쯤 가니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사인이 보이더라고요. 에효! 혼자 걷는다는 두려운 마음이 마음을 조급하게 했었나 봐요. 웃음도 났어요. '어이! 이래가지고 800㎞ 혼자 걸을 수 있겠나? 이제 시작인데!'

◇포도밭, 올리브밭, 밀밭을 지나서

언덕길을 오르는데 노부부가 천천히 오르고 계시더라고요. '올라~!'하고 인사를 하니 나한테 '코리안?' 하시는 거예요. 제가 배낭에 꽂아 놓은 태극기 바람개비를 알아보신 거죠. 언덕 끝에서 잠시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쉰 다음 조금 더 가니 마을이 나타났는데 거기에 먼저 출발한 언니가 벤치에서 쉬고 있었어요.

그림엽서에 나올법한 예쁜 마을이 보입니다. 시라우키(Cirauqui)래요. 로마시대에 지어졌다는 로마다리도 지나고 포도밭, 올리브밭, 밀밭이 이어진 길, 옛길과 새 길이 나란히 있어 두 길을 오가며 가다 보니 또 마을이 나타나더라고요. 로르카(Lorca)예요. 길가에 몇 번씩 본 사람들이 앉아 쉬며 우리도 쉬어가래요. 함께 앉아 물도 마시고 과일도 나눠 먹으니 또 독일 아줌마는 견과류를 내어 주시네요. 쉬고 일어나 조금 가니 바가 있네요. 이런! 아내가 한국인인 호세라는 사람이 하는데다가 라면도 팔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바로 좀 전에 쉬었으니…. 라면도 먹을 수 있었고 팔아 줄 수도 있었는데…. 갈 길이 머니 아쉬움만 뒤로한 채 다시 출발을 했죠.

에가강을 낀 에스테야 풍경.

날씨가 어제보다 덜 더운데도 4~5㎞ 남았다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요. 햇볕은 뜨거워지고 어디선지 화학약품 냄새도 나고 지쳐가고 있는데 '맛있는 빵과 훌륭한 포도주와 고기와 생선을 맛볼 수 있는 풍요로운 곳이며 부드럽고 깨끗하고 수질이 뛰어난 에가의 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12세기 프랑스 사제가 순례길을 안내한 최초의 책 <성야고보의 서>에서 극찬한 에스테야(Estella)에 도착을 했답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먹고 씻고 널고 나오니 동네가 조용합니다. 시에스타(낮잠 시간)지요. 미사를 드리려고 이곳저곳 성당을 돌아다녔는데 미사 하는 성당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카미노에서의 첫 번째 선물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해서 일단 숙소로 오는 길, 아름다운 성당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를 만났어요.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된 사람이었지요. 아들 같은 사람과 걷는 걸 몇 번 보았을 뿐인데 여기서 다시 만난 거지요. 우리가 그림에 관심을 두자 좋아했어요. 자그마한 화첩에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참 예쁘더라고요.

7시쯤 저녁을 먹으려고 알베르게 앞 식당으로 갔어요. 순례자 메뉴를 시키니 포도주도 따라나오더군요. 배가 고파서인지 음식도 맛있고 포도주도 괜찮았어요. 식사 후 마요드거리를 언니와 산책하는데 낮엔 그렇게 조용하던 골목이 시끌벅적합니다. 순례자들이 잠을 청하러 가는 시간쯤이면 도시는 깨어나서 활기를 되찾는 거지요. 무더운 스페인은 밤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고 해요.

에스테야 마을 어느 집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마을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함께 음악을 즐긴다.

걷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들려요. 둘러보니 낮에 닫혀 있던 집의 문이 열려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보고 있었고 음악 소리도 거기서 나는 거였어요. 그래서 문 앞에 있는 아저씨한테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보니 들어가도 된대요. 네 명의 아저씨가 스패니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하모니도 아름다웠고 노래도 아주 잘하시더라고요. 둘러보니 거의 현지인이고 순례자는 보이지 않았어요. 공연을 즐기는 낯선 동양아줌마가 신기했는지 그곳 분들도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하며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저도 만국 공용어인 웃음으로 화답을 하고 기분 좋게 그곳을 나왔어요. 스페인 전통 집에도 처음 가봤고 음악을 즐기는 그들을 보니 그런 분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참 부러웠어요. 카미노를 걸으며 받은 첫 번째 선물이었어요.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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