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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습지 활용법 익혀 공존 배워요

[옥야고 기자단] (4) 습지와 인간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6년 08월 09일 화요일

창녕옥야고기자단은 7월 23일 네 번째 활동에서 인간이 살아오면서 습지를 어떻게 활용해 살아왔는지를 알아보았다. 습지를 바탕으로 삼은 인간 삶의 자취를 찾아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창녕읍 술정리에 있는 한 초가집을 가장 먼저 찾았다. 하병수가옥 또는 하씨초가로 일컬어지는 이 건물은 250년 전 조선 말기에 지어진 민가다.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창녕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옛날 집은 대부분 기와지붕이지만 이 집은 보기 드물게 초가지붕이다. 보통 보는 볏짚이 아니라 억새로 이은 지붕이다. 볏짚으로 이으면 쉽게 썩어서 해마다 갈아야 하지만 억새는 그렇지 않아 5년에 한 번꼴로만 갈아주면 된다고 한다.

하씨초가 지붕에 올라가 있는 억새가 바로 습지의 산물이다. 지금은 물론 이런 억새를 구하려면 2~3㎞ 바깥으로 나가야 하지만 100~20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앞 창녕천 물줄기를 따라 억새가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고작 30년 전만 해도 하씨초가에서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논밭이 퍼질러져 있었고 개울가에는 여러 풀들이 자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씨초가 대청마루에서 설명을 듣는 장면.

그러나 정작 아이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초가지붕보다는 갖가지 옛날 농기구였다. 페달을 밟으면 와릉와릉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탈곡기(지금은 쓰지 못하게 묶여 있지만)라든지, 발로 밟아 볏짚 따위를 써는 작두, 옮겨다니며 닭을 한 마리씩 가두어 둘 때 쓰던 대로 만든 조그만 닭장,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로 만든 디딜방아, 곡물 껍질을 까부르는(그러나 오줌싸개들이 옆집에 소금 얻으러 갈 때 뒤집어쓴다는 사실로 더 잘 알려진) 키 따위가 기자단 학생들 관심과 흥미를 돋우었다.

하씨초가 뒤뜰에서 탈곡기를 찾아 밟는 시늉을 해보이고 있는 모습.

두 번째 찾아간 데는 유어면 가항마을이다. 우포늪이 지척으로 바로 붙어 있는 마을인데 여기서 가항은 목덜미(項)를 더한다(加)는 뜻이다. 옛날 1580년 창녕현감으로 부임한 조선 선비 한강 정구(寒岡 鄭逑·1543~1620)가 이 마을에서 토목 공사를 했다.

그때 가항마을은 마을 한가운데 오른편 언덕이 왼편 언덕과 이어지는 자리가 움푹하게 낮았다. 그래서 '메기가 하품만 해도' 여기를 따라 마을에 물난리가 들었다. 그러다가 한강 정구가 여기를 돋우는 공사를 해서 우포늪 넘치는 물이 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목덜미를 돋우었다는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우포늪 쪽(마을 뒤편)과 마을 안쪽은 다같이 지대가 얕은데 거기만 2~3m 솟아올라 도도록했다.

가항마을 앞쪽으로는 조그만 습지가 하나 지금껏 남아 있다. 가항늪이다. 늪은 사방이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쯤 되면 가항늪과 둘레 논밭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원래는 마을 앞뒤가 모두 습지였다. 농사를 지어 먹기도 했지만 조금만 물이 불어도 잠기곤 했다. 이런 와중에 450년 전 마을 뒷덜미를 돋운 공사 덕분으로 마을 앞 습지는 우포늪과 이어지는 물길이 끊어졌다.

창녕옥야고기자단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가항늪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모습./김훤주 기자

이로써 마을 앞 습지는 좀더 많이 개간할 수 있고 좀더 안정되게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었다. 개간은 바깥쪽부터 되기 시작했으며 가운데는 여전히 습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조금 남은 이 습지를 완전히 없애면 논밭은 조금 늘어날는지 몰라도 물을 끌어쓰기는 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래서 둠벙 개념으로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써 오다가 2000년대 들어 행정당국의 보살핌을 받아 살아남게 되었다….

옛적에도 사람이 습지로부터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기도 했음을 일러주는 셈이다. 기자단 김명기 학생은 이렇게 소감을 적어냈다. "보통 동양의 자연관은 자연을 이용·개발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데 일부러 토목공사를 하다니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마을에 물이 들어와 사람이 살기 어려워 그랬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이해가 됐다. 자연관이고 뭐고 사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가항늪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 2층에 올라서는 창녕우포늪생태관광협의회 성해민 팀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저기 벼처럼 납작한데 키가 큰 풀은 줄이야, 벼의 조상이지. 열매가 핫도그처럼 생겼는데 줄기가 둥근 녀석은 부들이야. 그리고 지금 수면을 뒤덮은 것은 개구리밥도 있지만 실은 생이가래가 가장 많아요." 그러고 보니 우포늪에서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물풀들을 보기 어려운데 여기 조그만 가항늪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팔락정을 찾았다. 가항마을 바로 옆 미구마을 들머리 언덕배기에 있다. 이름만 정자일 뿐이지 실제로는 구들을 놓은 방이 양쪽에 있고 가운데는 대청마루가 깔려 있는 3칸짜리 옛날 기와집이다.

팔락정에서 진행한 도전 골든벨 장면.

팔락정이 지금은 낙동강 본류와 직선거리로 800m 남짓 떨어져 있고 게다가 가운데는 높이 쌓은 인공제방으로 막혀 있다. 하지만 100년 전 일제강점기 제방을 쌓기 전에는 오랫동안 그렇지 않았다. 팔락정 마루에 서면 낙동강과 둘레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앞서 가항마을에서 토목공사로 물난리를 없앤 한강 정구는 이어 요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서당을 설치하는 등 어린아이들을 기르는 몽양(蒙養)사업을 크게 벌였다. 당시 서당을 창녕 곳곳에 모두 여덟 군데 두었다는데, 모두 없어지고 성산면에 있는 부용정과 여기 팔락정만 남았다. 정구는 이렇게 지역민을 위한 내실있는 사업으로 고을 분위기를 크게 새롭게 했는데 지금 건물은 1852년 지역민들이 정구를 기리며 고쳐 지은 산물이다.

팔락정은 그러니까 옛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그 가운데서 학문도 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활용한 경우가 되겠다. 창녕옥야고기자단은 이처럼 네 번째 활동에서 습지와 인간이 옛날에 어떤 식으로 다양하게 관계하면서 지내왔는지 알아봤다. 그렇지만 이대로 그냥 끝내면 아무래도 좀 밋밋하다.

그래서 마치기 전에 창녕과 우포늪에 대해 알아보는 '도전 골든벨'을 했다. 게임 형식으로 재미있게 복습을 겸한 셈이다. 학생들은 팔락정 마루와 축대에 걸터앉아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날씨가 더운데도 능동적인 태도로 즐겁게 함께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래서 선물로 마련한 문화상품권이 예상보다 더 많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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