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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의 가야금도 반한 이 푸른 절경 좀 보소

[발길따라 내맘대로 여행](87) 충북 충주 탄금대와 열두대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 2016년 08월 26일 금요일

이른 새벽과 늦은 밤 미세하게 가을 기운이 스친다. 느끼는가. 어제와는 조금은 다른 바람을. 입추에도 꿈쩍 않던 여름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에도 작렬하던 태양이 그래도 조금씩 물러가고 있나보다. 이제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볼까?

걷기 좋은 길을 찾아 발길이 닿은 곳은 충북 충주시에 자리한 탄금대(彈琴臺)다.

서울로 향하는 남한강 상류와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탄금대가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이름은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했다. 우륵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강 건너편 백성까지 감동하여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탄금대 공원 내 열두대 경치. 바위절벽 위에 나무 덱 전망대를 만들어 남한강과 탄금대교가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가야금 선율에 취한 모습을 상상하며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장소를 짐작해 탄금정을 세워놓았다. 탄금대로 향하는 길은 나무가 우거져 적당한 그늘이 안내한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 그 님은 어데가고 물새만이 슬피우나'.

탄금대 초입에는 2005년 세워진 탄금대 사연 노래비가 있다. 이 노래 안에 이 곳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가사를 음미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탄금정으로 향하는 길에는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이 있다. 우륵의 가야금 선율에 젖은 낭만적인 이곳이 조선 시대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팔천고혼위령탑

1592년 4월 28일 신립장군이 휘하 장졸 8000여 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을 맞아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였다. 조총을 쏘며 달려오는 왜군에 활로 맞서 싸웠던 곳이다.

신립 장군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열두 번이나 절벽을 오르내렸다는 열두대의 전설에서 장군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전세가 불리해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했다고 한다.

바위 절벽이라 아찔했던 열두대는 나무 덱 전망대를 만들어 접근하기 쉽다. 소나무가 우거진 이 곳에 서면 발 아래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멀리 시선을 두면 탄금대교가 보인다.

대흥사

탄금대 입구에서 열두대로 향하는 길에는 인상깊은 조각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그 중간 즈음에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은 충주 출신 권태응 시인의 동시다. 단순한 시에 자연의 이치가 담겼다. 권태응 시인의 작품은 충주문학관에서 더 살펴볼 수 있다.

탄금대 여행의 마지막은 사찰이다. 탄금대에는 대흥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는데 본래 이곳에는 신라 진흥왕 때 용흥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6년 오법우라는 스님이 대흥사로 새롭게 창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대흥사에는 신립 장군을 기리도록 세운 충장공 신립 장군의 비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고 긴 여름, 이번 가을은 유독 짧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놓칠 수 없다면 서둘러 가을을 맞으러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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