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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 읍성 '해미읍성'으로 소풍가볼까

[발길 따라 내맘대로 여행](88) 충남 서산 해미읍성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 2016년 09월 09일 금요일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그토록 들끓던 여름이 한 톨의 미련도 없다는 듯 가버리는 데는. 어쩌면 이 계절도 그렇게 떠나버리지 않을까. 성큼 와버린 가을이 반가우면서도 벌써 아쉽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좋은 날들이다. 계절을 만끽하고자 발길이 닿은 곳은 성 안으로 조선 시대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 충남 서산 해미읍성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해미IC로 빠지면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해미행 시내·시외버스를 타면 2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됐다. 1416년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조선시대 왕의 친림하에 거행된 군사훈련을 겸한 수렵대회)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 머물렀다. 태종은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했다. 이에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옮기기 위한 대상지로 정하고 1417년(태종 17년)부터 1421년(세종 3년)까지 축성을 완료하게 된다.

해미읍성 남문인 진남문.

높이 5m, 둘레 1.8㎞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우리나라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받으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으로 불린다. 조선 초기 육군 최고 지휘기관인 충청 병마절도사가 근무한 영(사령부)이 자리한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1579년(선조 12년)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전라도로 전임될 때까지 10개월간 근무했다.

세월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성벽의 크고 작은 돌은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돌에는 청주·공주 등 희미하게 고을명이 새겨져 있다. 축성 당시 고을별로 정해진 구간을 맡아 성벽이 무너지면 그 구간의 고을이 책임지도록 한 일종의 공사실명제를 했기 때문이란다.

남쪽으로 통하는 성의 정문 '진남문'에 들어서면 아늑하고 평화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진남문으로 시작해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자.

읍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민속 가옥 등이 있다. 민속 가옥에 가까워지면 '따각따각'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서산 지역 노인들이 직접 다듬이질을 재현하고 짚풀을 꼬아 짚신도 만들고 바구니도 만들고 있다. 여느 민속마을과 달리 생동력이 넘친다.

동헌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둥근 담장을 두른 옥사(감옥)도 있는데, 이 옥사에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었다. 서산과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 지방을 내포(內浦) 지방이라 일컫는데, 조선 후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가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싹 틔웠다. 19세기 이 지방은 주민 80%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당시 천주교 교인이란 죄명으로 해미읍성으로 열흘간 귀양을 왔었다.

1790년대 정조 때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탄압에 대항해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와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독일의 상인이던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현군 묘를 도굴한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 이때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 지방 13개 군현의 군사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지역의 교도를 모두 잡아들여 해미읍성에서 처형했는데 그 수가 무려 1000명 이상이었다고 전한다. 옥사 앞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는데, 이 나뭇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고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처형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철사 자국이 있다.

동문 잠양루를 지나면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한 청허정이 있다. 충청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곳이다.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솔향이 솔솔 전해지는 소나무숲 길을 지나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된 객사, 서문 지성루를 지나면 너른 잔디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 된다.

순교의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 이곳은 평화롭기만 하다. 푸르디푸른 잔디 위에서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여유를 즐긴다. 연을 날리고 굴렁쇠를 굴린다. 투호와 제기차기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사물놀이와 판굿 등 전통문화공연 등 볼거리가 수시로 마련된다. 가을이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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