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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뿌리 깊은 역사 안고 우뚝 솟았구나

[경남의 산] (14) 함안
구릉 곳곳에 가야·신라 고분군
말이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700년 전 아라홍련 품은 조남산
옛 안야국 성산산성 흔적 남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6월 23일 금요일

함안(咸安)은 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다. 다 함(咸)과 편안할 안(安), 한자 그대로 다 함께 편안하게 사는 세상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강물이 임금을 향해 북쪽으로 흐른다 해서 한때 역적의 땅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강은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일 뿐, 이 땅에서 역적이 난 적은 없다. 도리어 후덕하고 순박한 이들이 평화롭게 삶을 일구었다.

함안 북쪽에 자리 잡은 남강은 동으로 대산면을 지나 낙동강과 만난다. 남쪽에는 여항산(770m)을 중심 산으로 한 낙남정맥이 북으로 팔을 뻗어 고을을 감싼다. 강과 산맥이 품어 만든 풍성한 들판이 칠원, 가야, 군북 분지다.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이들 분지와 함께 낙남정맥이 함안 땅에 펼쳐놓은 수많은 구릉에 기대 살았다. 강력했던 고대국가 안야국(아라가야)은 이런 배경에서 가야시대 맹주국으로 500년을 지속했다. 안야국의 옛 영광은 구릉마다 고분군이란 자취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아라가야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그 규모와 흔적만으로도 당시 찬란했던 문화수준을 엿볼 수 있다.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하는 고분군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산책길이다. /유은상 기자

산(山) 위에 솟은 산(山), 고분군

고분군(古墳群)이란 말 그대로 옛날 무덤이다. 보통은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것을 가리킨다. 대체로 가야와 신라시대 커다란 무덤이 모여 있는 것을 일컫는다. 함안은 대부분 지역에 두루 이 고분군이 있다. 전체적으로 130곳이 넘는다고 한다. 고분군은 주로 마을 주변 구릉(낮은 산) 위에 있다. 예컨대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선왕골 고분군은 삼봉산(三峰山·271m) 남동쪽 사면에 있다. 가야읍 신음리 고분군은 괘안마을 북동쪽 구릉에서도 해발 30m 내외에 분포한다. 이들 구릉은 함안을 둘러싼 낙남정맥이 분지를 향해 내리뻗은 줄기다. 커다란 봉분이니, 산 위에 또 다른 작은 산이 있는 모양새다. 고분군이 있는 곳은 대체로 지석묘(고인돌)도 있는 곳이 많다. 함안 구릉들이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삶터 노릇을 했다는 증거다.

<함안군지>에 소개된 고분군은 42곳이다. 이 중 으뜸은 가야읍 말산리와 도항리에 걸쳐 있는 말이산 고분군이다. 말이산(末伊山)은 해발 40~70m 등성이로 이어진 길쭉한 구릉이다. 말산(末山)이라고도 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두산(頭山), 수산(首山)이라고도 불렸다. 뜻 그대로 머리 산인데, 머리의 옛말이 '마리'다. 결국, 마리를 소리 그대로 한자로 옮겨 말이산이 된 것이다. 여기서 머리란 우두머리를 말한다. 말이산 고분군은 안야국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란 뜻이다. 1587년에 당시 정구 함안군수가 펴낸 <함주지>(咸州誌·함주는 함안의 옛 이름 중 하나)에도 '세상에 전하기를 옛 나라의 왕릉이라 한다(傳古國王陵)'고 기록돼 있다. 왕의 무덤인 만큼 함안 지역 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말이산 구릉에만 고분이 1000기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굴과 도시화로 어느 정도 훼손되기는 했지만, 1500년 전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고대 역사를 실감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서 말이산 고분군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대상으로 선정됐다. 다른 함안 고분군 중에서는 칠원읍 오곡리 고분군과 군북면 원북리 고분군이 규모가 크다.

산인면 자양산 정상 표지석.

함안 진산 여항산, 칠원 진산 작대산

조선시대까지 함안은 함안 고을과 칠원 고을로 나뉘어 있었다. 함안 고을 진산(鎭山·나라가 지정한 고을을 수호하는 산)은 여항산이다. 옛 고을의 중심지인 읍치(邑治)는 현재 군청이 있는 가야읍이 아니라 함안면 봉성리 일대다. 여항산은 읍치가 기대기엔 제법 멀다. 그래서 당시 읍치는 여항산에서 함안면 쪽으로 길게 뻗어나온 산줄기 중 비봉산(飛鳳山)을 주산(主山)으로 삼았다. 지금 함안초등학교 뒷산을 말한다. <함주지>(1587년)를 편찬한 정구 군수가 이 산을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국으로 보고 이름을 봉황산이라 지은 듯하다. 그는 이 봉황을 지키고자 읍 터 주변에 오동나무를 심고, 대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봉황의 먹이라는 데서 착안한 풍수지리적 발상이다.

옛 칠원 고을은 현재 함안군 칠원, 칠서, 칠북면과 창원시 지역 일부를 포함한다. 읍치는 칠원읍 구성리 일대에 있었다. 칠원 고을 진산은 작대산(爵大山·687m)이다. 창원 북면과 경계를 이루며 천주산(天柱山·639m)과는 능선으로 바로 이어져 있다. 천주산까지가 옛 칠원의 영역이다. 작대산은 천지개벽을 하며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산이 작대기만큼 남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작대산은 또 청룡산(靑龍山)이라고도 불렸다. 작대산 골짜기에 산정이란 산골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옛날 용이 살다가 승천한 용지굴이 있는데 여기서 청룡산이란 이름이 나왔다. 옛 기록은 모두 청룡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 이것이 더욱 유래가 깊은 지명으로 보인다.

칠원읍에서 바라본 작대산.

고려시대 꽃씨 잠든 조남산

사적 제67호 성산산성(城山山城)은 함안 고대사를 현재로 이어주는 통로다. 여항산에서 가야 분지로 길게 뻗어나온 산줄기, 조남산(照南山 혹은 造南山·140m) 정상부에 자리한 옛 안야국의 성이다. <함주지>에는 가야국 옛터라고 기록했다. 안야국이 신라에 점령되었을 때 용감하게 싸우던 어느 장군이 패배를 원통해하면 이 산으로 들어온 후엔 그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1991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발굴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이 많이 발굴됐다. 가야시대보다는 신라시대 이후 유물이 대부분이다. 그중 아라홍련은 옛 함안의 역사가 현대에 부활한 상징적인 꽃이다. 2009년 성산산성 유적지 안 연못에서 연꽃 씨앗이 여러 개 발굴됐다. 분석 결과 700여 년 전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정성스러운 노력 끝에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고, 2010년 7월 첫 꽃이 피었다. 함안군은 이 꽃에다 옛 함안의 영광을 담아 '아라홍련'이란 이름을 붙였다. 주로 7~8월 함안박물관에 가면 주변에 흐드러진 아라홍련을 볼 수 있다.

700년 씨앗에서 꽃핀 아라홍련.

자양산에 올라 함안을 굽어보다

함안을 떠나기 전 자양산(紫陽山)을 오른다. 정상 부근에 송신탑과 글라이더 활공장이 있는데, 활공장에서 바라본 함안 풍경이 멋지다. 자양산은 산인면의 주산인데, 조선시대 지도마다 빠짐없이 등장할 만큼 중요한 산 중 하나였다. 옛 이름은 자구산(紫丘山)이다. 자양산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너른 들판이 대산면(代山面) 평야지대다.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역이라 제방을 만들기 전에는 메기가 침만 뱉어도 홍수가 진다고 할 만큼 침수 피해가 심했다. 그래서 일부러 평야 이름에 뫼 산(山)을 붙여 대산이라 불렀다. 이름이나마 산을 만들어 홍수의 두려움을 떨치고자 한 것이다.

대산과 반대편으로 가야 분지를 사이에 두고 자양산과 마주한 산이 군북면에 있는 백이산(伯夷山·369m)이다. 옛 이름은 서산(西山)이다. 조선시대 임금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여(趙旅·1420~1489)의 충절이 서린 산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중국 충절의 상징 백이숙제 형제에 빗대어 이 산을 백이산으로 불렀다고 기록은 전한다.

수해 잦았던 대산면 들판.

※참고문헌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국토지리정보원, 2011) 

<함안군지>(함안군지 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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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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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장석 기자입니다. 경남의 산 등 공공 기획. 15면/20면 지역민 참여 보도, 제휴 뉴스. 가끔 자체 기획.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