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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사라지니 드러낸 '조선팔경' 가야산과 홍류동

[경남의 산] (18) 합천
가야산 경관 수려·생태환경 우수, 기암괴석과 황홀해…최치원 선생 몸 맡겨
사색하기 좋은 가야산 소리길, 계곡 주변 노송 '청정 기운'

유은상 기자 yes@idomin.com 2017년 08월 18일 금요일

가야산

합천은 북고남저형 지형이다. 북쪽으로는 소백산맥에서 이어진 고봉준령이 즐비하다. 대신 남쪽과 서쪽으로는 황강과 남강이 흐르면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산과 호수, 강을 골고루 갖춘 혜택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산만 놓고 보면 황매산, 남산제일봉,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대암산 등 명산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야산이 가장 이름 높다.

가야산에 다녀간 옛 선현이 남긴 유람록도 한둘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꾸준한 사랑을 받은 것은 우선 산 자체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사찰 해인사, 홍류동 계곡까지 품고 있어 더 이상의 꾸밈과 설명이 따로 필요없는 곳이다.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 경계에 있는 가야산(伽倻山·1430m)은 경관이 수려하고 생태환경이 우수해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가야산은 지리산으로 향하던 소백산맥이 동쪽으로 뻗어 대덕산, 수도산을 거쳐 큰 산세를 이룬 곳이다.

안개에 덮인 가야산.

가야산 명칭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대가야의 땅인 합천, 고령지역을 대표하는 산이라는 상징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관련해서 정견모주 설화도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지에 반해 뇌질주일과 뇌질청예를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인 아진아시왕, 뇌질청예는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의 별칭이라는 것이다.

또 부처의 설법처인 인도 불교성지 부다가야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도 있다. 범어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고 가야산의 정상부가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밖에도 부처를 뜻하는 상왕에서 유래한 상왕산을 포함해 설산, 중향산, 기달산 등의 이름도 있다.

산행은 무더위를 핑계삼아 가장 가깝고 쉬운 해인사코스를 선택했다.

차에서 내릴 때까지 궂은 비가 걱정스럽게 했지만 해인사를 지나면서 다행히 그쳤다. 산신에게 산행을 승낙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해인사를 지나 왼쪽 계곡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코스는 평균 경사 19도로 8분 능선까지는 수월한 길이 이어진다.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숲이 무성해 싱그러운 산책길을 걷는 느낌이다.

8분 능선을 지나 계단이 나타나면서 다소 힘이 부치지만 육체적인 부담은 시원한 바람이 금방 씻어버린다.

하지만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고작 5∼6m 앞만 보일 만큼 시야가 갑갑하다. 구름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편안하게 올랐으니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소에 덕을 쌓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해 본다.

그래도 이왕 올랐으니 30분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상왕봉 정상에서 음료와 간식을 먹는 사이 귀여운 다람쥐가 경계심을 풀고 가까이 다가온다. 점심때니 이놈도 배가 고플 터, 과자를 요기 될 만큼 던져주고는 "가서 산신령님에게 잠시 구름을 걷게 해달라고 부탁 좀 전해줘"라고 말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안개 흐름이 빨라지더니 초록색 산하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할 수밖에 없었다.

'짠∼' 하고 막이 걷히면서 마주한 풍경, 몇 배로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왼쪽 칠불봉과 그 아래 이어진 만물상, 앞쪽으로 보이는 봉천대와 매화산, 단지봉, 남산제일봉 너무나 고맙고 감동스러운 풍경이었다. 가야산이 '조선팔경' 또는 '12대 명산'에 꼽힌 이유를 실감한다. 카메라 셔터도 쉼 없이 소리를 내며 풍경을 담아낸다.

▲ 봉천대.

기암괴석의 모습도 환상적이다. 이중환 선생은 <택리지>에서 가야산을 '경상도에는 없는 석화성(石火星) 형상'이라고 기록했다.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치솟는 듯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연출한다는 뜻이다.

시원해진 풍경에 마음마저 넓어지면서 신선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품고 산에서 내려왔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

홍류동은 가야면사무소에서 해인사 들목까지 4㎞에 이르는 계곡이다.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붉게 물든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가을날 빨간 단풍잎이 물에 떠 흐르는 장면이 연상되는 곳이다.

하지만 홍류동은 속세의 소리를 끊어버리기라도 할 듯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로 잘 알려졌다.

신라 최치원 선생도 권력 다툼에 환멸을 느끼고 38세에 가족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와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최치원은 계곡물에 속세의 때를 씻으며 바위벽에 시를 남겼다.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옳으니 그르니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온통 둘러버렸다네.' 이후 그는 가야산에 갓과 신발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홀연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이곳은 문인들에게는 유람과 풍류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다.

해인사 아래 치인리는 최치원 선생이 살던 곳으로 그 이름을 따 치원촌이라 하였는데 나중에는 치인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류동에는 주요 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16명소가 있으며 합천 8경 중 제3경으로 꼽힌다.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한국 4대 계곡에도 포함된다.

홍류동 계곡.

지금은 홍류동 계곡을 주 코스로 삼아 '소리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소리길은 대장경테마파크에서 해인사까지 총 7.5㎞ 구간이다. 최치원 선생이 남긴 글처럼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고 사색하기에 좋은 길이다.

소리길은 물소리, 산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라는 표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의 소리(蘇利), 즉 불가에서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란 뜻도 있다.

소리길은 1구간 홍류동여행(대장경테마파크 각사교∼홍류문 4.2㎞), 2구간 발자취를 찾아서(홍류문∼명진교 1.5㎞), 3구간 비경을 찾아서(명진교∼치인교 1.6㎞), 4구간 천 년의 길(영산교∼해인사 1.2㎞) 등 4개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다 걷는 데는 4시간가량 걸린다.

계곡을 따라 덱과 나무다리가 잘 갖춰져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계곡 주변의 노송이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과 계곡의 물소리,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에는 산행보다는 소리길 산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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