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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기] (14) 창원 의창구 봉곡동·봉림동

선풍 드날렸던 사찰 황량한 절터로 남아
진경심희 대사 봉림사 창건
통일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
고려 초기 작품 '삼층석탑'
1960년 상북초교로 옮겨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2017년 08월 25일 금요일

창원시 의창구 봉곡동 상북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봉림사지 삼층석탑'이다.

난데없이 오래된 석탑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 석탑은 봉림동 북쪽 봉림사 터에 있었다. 높이 270㎝ 화강암 석탑은 자칫 일본으로 옮겨질 뻔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으로 팔려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관리가 허술해지자 1960년 지금 위치로 옮겨졌다.

탑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은 2층이었겠으나, 여러 차례 옮겨지면서 깨져나갔다. 지금은 위층 기단 일부만 남았다.

3층을 이루는 탑신부는 그나마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꼭대기는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 장식)로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학교 본관 건물 중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꼭, 아이들을 지키겠노라 다짐하듯.

삼층석탑이 원래 있던 봉림사 터를 찾아나선다. 상북초등학교에서 나와 봉곡중학교 정문을 거쳐 500m가량 걷다가 왼쪽으로 꺾는다.

▲ 창원 상북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봉림사지 삼층석탑. /최환석 기자

아파트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택지개발에도 살아남은 몇몇 집이 보인다. 잇따라 '봉림사지 1.1㎞' 안내판이 나온다. 800m가량 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탄다.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차분히 오른다.

두 갈래로 길이 나뉘는 데서 '가야불교 초전법륜성지 봉림사 터 250m' 안내판이 등장한다. 목적지가 가깝다.

다시 두 갈래가 나온다. 정상 방향으로 난 길에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문화재 보호구역임을 알린다. 이곳인가 보다.

봉림사 터로 들어서는 길이 마치 '비밀의 숲'처럼 손님을 반긴다. 어두운 숲길을 얼른 통과하자, 드디어 봉림사 터가 나타난다.

'구산선문 봉림산 봉림사'. 통일신라시대 선문구산 하나인 봉림산파 중심 사찰이 이곳에 있었다.

폐허처럼 보이는 터 한쪽에 안내판이 하나 섰다.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인 봉림산 선문을 개산한 진경심희 대사(서기 853~923년)님께서 봉림사를 창건하였다."

심희는 9세에 출가했다. 명산을 다니며 수행을 하다 봉림사를 세운다. 그는 궁으로 들어가 경명왕에게 설법을 하기도 했다.

▲ 봉림사 터. /최환석 기자

이후 봉림사로 다시 돌아온 그는 제자를 가르치다 68세에 입적한다. 왕은 시호를 '진경대사'라 하고, '보월능공'이라는 탑 이름을 내렸다.

안내판 옆 비석 두 개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등을 서울로 옮겼음을 기록한 표석인 듯하다.

현재 보물 제36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보물 제363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는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있다.

선풍(禪風)을 떨쳤다는 봉림사는 이제 터만 덩그러니 남았다. 고요한 옛 절터에 우두커니 서 진경대사가 입적 전 남겼다는 법문을 떠올린다.

"모든 법은 다 공(空)하고 온갖 인연은 다 고요한 것이니, 말하자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완연히 떠가는 구름과 같다. 너희는 부지런히 중생을 교화하고 삼가 슬퍼하거나 서러워하지 마라." 이날 걸은 거리 3.4㎞. 5734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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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석 기자

    • 최환석 기자
  • 문화부에서 음악, 무용, 정책을 담당합니다. 격주로 만보기를 차고 걷기도 하고, 읽은 책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010-8994-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