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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위한 세상 꿈꾸며 '현실' 그리다

[문화예술인] 노경호 작가
사회 문제·현상에 적극 '참여'
부당·적폐로 점철된 세태 비판
세월호·4대 강 등 메시지 '강렬'
역사 속 인물도 작품으로 남겨

문정민 기자 minss@idomin.com 2017년 09월 14일 목요일

높다란 빌딩이 늘어서 있다. 회색빛 아파트도 숲을 이뤘다. 웅장한 도심을 배경으로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간다. 허리는 굽었고 머리는 대충 동여맸다. 주름진 이마 아래 눈은 질끈 감았다. 폐지를 잔뜩 실은 수레의 무게만큼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낡은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인 달동네에 노을이 진다.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허름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뒷짐 진 한 손에 찬거리 든 봉지를 들고. 작고 오래됐지만 유일한 보금자리다. 금방이라도 헐릴지 모를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은 누구인지 묻는 것입니다.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내몰린 그들은 바로 우리 아버지고 어머니라는 것을."

노경호 작가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작품 사이에 앉아 있다. /문정민 기자

노경호(51·진주 명석면) 작가가 컴퓨터로 작업해 디지털프린팅된 작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 작가는 민족미술인협회 경남지부 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을 통해 현실에 적극 참여한다.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현상을 다양한 형태의 그림으로 녹이는 것.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해 붓을 든 그림은 단순히 현상만을 담지 않는다.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칠해 비스듬히 뱃머리가 보였던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4연작으로 그렸다. 배의 형상조차 찾을 수 없는 깊고 검은 바다는 결국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어른들 책임을 묻는다.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작품명은 보는 이들마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해 붓을 든 노경호 작가는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칠해 비스듬히 뱃머리가 보였던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4연작으로 그렸다. 바다는 결국 핏빛으로 물들었다.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작품명은 보는 이들마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노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2010년 작업한 작품은 글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포클레인이 강을 파헤치는 모습을 디지털프린팅으로 완성시켰다. 생명들이 죽어간 자리는 붉은 색이다. 다이아몬드 업계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영화 속 대사를 차용해 "신도 포기한 땅"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봐도 생태계를 망가뜨린 4대 강 사업의 폐해를 인식할 수 있다.

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도 외면하지 않는다.

특히 '칼' 시리즈는 서민들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일본도를 친일파가 독립투사의 등을 찌른 <배반의 칼>로 형상화했다. 식칼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가슴을 찔러대는 <비겁의 칼>로 형상시켰다. 반면 <충의 칼>은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이순신 장군의 충정을 빗댔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가슴을 찔러대는 <비겁의 칼>은 식칼로 형상화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는 노 작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함께 엮어서 그림을 그린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이라 제목 붙인 그림은 간결하다. 우리나라를 표상하는 태극기 문양을 배경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두 분 다 온갖 소용돌이 속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였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갔던 모습은 닮고 싶은 면이기도 하다."

노 작가의 책장에는 역사책이 빼곡하다. 역사 속 인물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한 중요한 사료들이다. 안중근과 정약용을 그린 작품은 어두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영웅을 대변한다. 그는 다른 나라 위인만 좇지 말고 우리나라 위인을 통해서 긍지를 높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작가는 역사 속 인물을 그림으로 옮긴다. 안중근을 그린 작품은 어두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영웅을 보여준다.

노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부당함과 적폐로 점철돼 있다. 우리나라 지도를 낭떠러지로 채운 그림은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현 세태가 겹쳐진다.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절벽은 깊은 절망감을 안긴다. 노 작가는 자본과 물질만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회에서 인간은 배제되어 있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청년, 노동자, 노인들이 제대로 살 수 있기를 염원하는 노 작가. 그가 그린 <희망버스>가 진정한 희망을 품고 달릴 수 있기를 또한 바라본다.

〈그들은 누구인가〉는 나이가 들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내몰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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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민 기자

    • 문정민 기자
  • 문화부 연극, 문학, 영화 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