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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 애틋함 예술로…회원동 출신 작가들 동네 모티브로 활동

[사라지는 고달픈 삶의 흔적 회원동 500번지] (5) 추억을 작품으로 남기는 작가들
최수환, 문짝 등 오브제로 전시  
이아성, 철거 중인 모습 회화로

이서후 기자 유희진 인턴기자 who@idomin.com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철거가 진행 중인 회원동 재개발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분이 굉장히 쓸쓸해집니다. 무언가 중요한 한 시대가 스러져가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회원동에서 자란 예술가들은 이런 부분이 더욱 예민하게 다가올 겁니다. 여기, 회원동 500번지로 상징되는 좁은 골목과 험난하고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작품으로 남기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회원동 추억을 작품활동의 중요한 모티브로 여기지요. 그래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이 누구보다 큽니다. 회원동 500번지 기획 마지막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회원동 출신 예술가들이 기억하는 옛 회원동은 악다구니로 가득한 이미지다.

"동중 네거리에 무슨 목욕탕이 있었는데, 명절이면 북새통을 이루었고, 아버지가 사주는 부산우유 병 우유가 정말로 고소했다. 회산다리 회원천 위아래로 난장이 섰고 중간 중간 포장마차에서는 악다구니가 끊어지질 않았는데 우리 아버지들이 아니었나 싶다. 여학생들에겐 그 길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회원동에서 20년을 살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도예가 강태춘(51·충남 부여) 씨 이야기다.

그는 5살 때 부산에서 회원동으로 이사한 후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20년을 회원동에서 살았다.

강 씨보다 10년은 더 젊은 조각가 최수환(39·창원시) 씨 추억도 비슷하다. 그는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 26년을 살았다.

"동네 친구 중에 대졸이 저밖에 없어요. 다들 문제가 많았어요. 어릴 때 기억은 항상 어느 집에서 터져 나오는 나가라 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 경찰 오고…. 굉장히 우울합니다. 그때는 철길에 기차가 왔다갔다했는데 지금도 인상적인 기억 하나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학교를 안 와요. 그래서 집에 찾아갔더니 다리가 잘렸어요. 기차 올라타고 하면서 놀다가 기차에 다리가 들어갔대. 그런데 그때 그런 일이 되게 많았어요. 어째 보면 말이 안 되는 게 기차가 정말 사람들 사는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 거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이 다 있었구나 싶죠."

2015년 최 씨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니 집이 회원동 근처 산호동으로 이사를 했더란다.

"유학 가기 전까지 회원동 재개발된다 안 된다 말이 많았었거든요. 그런가 보다 하고 유학을 갔다가 왔는데 재개발이 시작됐더라고요. 2015년도에 돌아와서는 회원동 빈집에 들어가 보니까 그 자체로 보물이더라고요. 사람들이 살았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다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사람의 감정을 끄는 게 있거든요. 이 집은 곧 부서질 거니까 작품으로 만들어서 남겨야겠다 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최 씨가 처음 회원동을 소재로 만든 것은 '새이웃'(2016)이란 작품이다. 높이가 8m인 이 작품은 회원동 빈 친구 집에 남은 옛 창문을 오브제로 썼다.

"2016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 낸 작품이에요. 회원동 우리 이웃집 창문을 떼 와서 프레임을 만들었어요. 막대 끝에 전구를 달고 모터로 전구가 창문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는 구조예요. 창문 안으로 공간만 있고 전구 빛을 통해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자체를 유령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죠. 안으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개성도 없고 목적 없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가. 집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거기 누가 사는 건데 빛만 떠있고 그 안에 누가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그러면서 새로운 건물만 자꾸 세워지고 제가 보기에 창원이라는 동네가 그렇게 느껴졌나 봐요."

다음 작품은 문짝을 이용한 설치였다. 회원동 주택에서 오래된 문짝을 구해 서로 마주 보게 한 후 한쪽을 열면 다른 쪽도 같이 열리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처음에 만든 3m짜리는 '함께, 혼자'란 제목으로 지난 7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갤러리 리좀에서 전시했다. 그러고는 바로 이어 같은 작품을 6m로 늘여 '거울'이란 제목으로 3·15아트센터에서 전시했다.

이와 함께 설치한 것이 최 씨가 살던 회원동 2층 주택을 모형으로 만든 '기억'이란 작품이다.

"20:1 비율로 축소해서 우리 집 내부를 모형으로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작은 구멍을 통해 공간 내부를 보는 거예요. 낮에는 바깥이랑 같은 빛이 모형으로 들어오고 밤에는 당연히 다 어두워지는 거죠. 이런 식으로 사라지는 공간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최 씨에게 재개발로 사라지는 회원동은 한 번은 꼭 치러내야 할 주제였다. "제가 다른 작업을 하더라도 지금은 제 모든 신경이 회원동으로 가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주제,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근원적인 감정이나 방향성은 회원동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요. 왜냐면 회원동에 20년 넘게 살았고 딴 데 있더라도 그 공간에 있었던 감성하고 지금하고 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내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을 할까 생각 중이에요."

회원동에서 태어나 자란 서양화가 이아성(51) 씨는 직접적으로 '회원동 500번지'(2017)란 제목을 작품에 썼다.

그는 그림 곳곳에 어린 시절 회원동 추억을 담았다.

"그림 왼쪽 아래 보이는 집은 제가 당시 살았던 회원동 500번지 집을 그대로 살려 놓은 거예요. 지금은 없어요. 빨간색으로 표현한 게 바닥이에요. 아버지가 예술적 감각이 있으셨는데 바닥을 남들과는 다르게 빨간색 벽돌을 까셨어요. '버노집'이라고 개집도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버노를 파는데 그때 내 키랑 버노 키가 비슷했어요. 버노가 리어카에 실려갔어요. 저는 개가 우는 걸 처음 봤어요. 그래서 버노집으로 버노의 이미지를 조금씩 살려놨어요. 버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요."

또 다른 '회원동 500번지'(2017)란 제목의 소품은 아주 어둡게 표현됐는데, 철거가 진행 중인 회원동을 표현한 것이다.

이 씨는 지금도 회원동에 살면서 매일 철거되는 동네를 지켜보고 있다.

"무너져가는 회원동 500번지를 제가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 아닙니까. 우리 집 바로 밑에부터 바리케이드를 치고 허물고 있어요. 제가 여기서 느끼는 것은 어둠이에요. 하지만, 어두운 회원동 곳곳에 금색을 넣었어요. 희망을 뜻하죠. 앞으로 좋아지겠지. 암울하지만 희망이 있을 거다. 어둡기만 하기보다는 희망적이고 지금은 재개발한다고 다 깨부수지만 희망은 반드시 있다. 이런 뜻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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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국장석 기자입니다. 경남의 산 등 공공 기획. 15면/20면 지역민 참여 보도, 제휴 뉴스. 가끔 자체 기획.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