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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경리를 물었고, 그들은 생존을 말했다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1-1. 통영 서피랑
2006년 가을 먼당 주민들은 외지인에게 툭, 말을 건넸다
사람도 골목도 사라진 지금, 공원만 덩그러니 있을 뿐 …
느리고 편했던 통영의 시간은 한낱 '내 생각'에 불과했다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나는 왜 골목을 찾는가? 기록하는 것이다. 기자로서. 복잡하거나 골치 아픈 것이 아닌 소프트한 기록. 이왕이면 규칙적으로 하려고 10년 전에 찾았던 경남의 골목을 다시 찾는다. 변화한 사람, 변화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골목은 취재원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취재한다. 자연스럽다. 편하다.

나는 언제나 통영에 가고 싶다. 통영의 시간은 나에게 느리고 편하다. 그런데 그걸 한낱 '내 생각'으로 깨닫게 해준 곳이 통영 골목이다. 내가 묻는 통영과 통영 사람들이 말하는 통영은 달랐다. 나는 박경리를 물었으나, 그들은 생존을 말했다.

2006년 가을 통영에 왔을 때에는 무전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에 갔다가 서피랑에 갔다. 11년이 흐른 뒤 최근 나는 광도면으로 옮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서호시장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가 서문고개 입구에서 내렸다. 서호시장의 '활기'와 '생기'보다 서문고개에 새겨진 박경리의 '한'이 먼저 생각났다.

통영 서피랑. /경남도민일보 DB

서문고개 입구.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원고지를 옮긴 새김비는 10년 전 그대로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 <김약국의 딸들> 3장 '요조숙녀'편 한 대목이다. "아편쟁이 남편한테 매 맞고 도망 온 셋째 딸을 친정 '어무이'가 고개 너머 살림집으로 데려다주는 장면이다. 큰딸은 과부에 영아 살해 혐의까지, 머슴을 사랑한 셋째는 발광을 했고, 넷째 용옥은 배가 뒤집혀 죽었다." 박경리의 펜 끝은 그렇게 여자의 운명에 모질고 독했다.

가난한 고개마을, 선술집에 사창가까지 딸려 '야마골'이라 불렸던 이곳에서 아들을 낳지 못한 박복한 여자의 딸로 자랐던 박경리, 진주여고 졸업 후 결혼을 했다 전쟁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던 박경리, 딸 하나 데리고 살면서 재기에 몸부림쳤으나 결국 고향을 등지고 다시는 찾으려 하지 않았던 박경리의 정서는 그렇게 때를 놓친 정염의 여인들에게 잔혹했다. 서문고개 먼당, 일명 뚝지먼당, 지금은 서피랑으로 부르는 고갯마루 문화동 328-1번지에 박경리 선생 생가가 있다.

거기서 10년 전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골목이 절묘하게 찾아가는 집집마다 양철대문이 활짝 열렸고, 담장 앞에는 꽃이 피어 있다. 군데군데 사람들은 모여 지나가는 사람들 발을 잡는다. "슀다 가지 와?" "쏘주 한잔, 하고 가소!" … 가난해보이는 동네 주민들에게서 김약국네처럼 처절한 숙명에 짓눌린 모습을 당장 찾을 수는 없다.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동네를 소개한다. "아따 참, 저쪽이 간창골 아이요. 이쪽은 대밭골이고. 저 밑에 내려가면 명정샘 두 군데가 지금도 남아 있제."> - 〈경남도민일보> 2006년 11월 6일 자

◇사라진 골목, 사라진 사람들 = 그러나 그 사람들이 사라졌다. 슬레이트 집들도 골목도 하나같이 사라졌다. 싹 깎아버린 먼당에는 공원이 들어섰다. 스산했다.

먼당 꼭대기에는 서포루가 섰다. 거기서 비로소 사람을 만났다. "박경리예? 저 밑에 생가가 있다 아임미꺼. 그거 말고는 몰라예. 살기 바쁜데…." 60대로 보이는 이 여성에게 박경리는 멀다. 나야 박경리를 묻지만 사람들은 사는 게 우선이다. 그 사실은 먼당 아래 명정동 노인회관에서 분명해졌다.

이곳 할머니들이 3년 전 '박경리학교'라고 한글학교를 1년간 다니고는 이렇게 시를 썼다. '별명 이정숙. 내 별명은 강냉이/ 젊어서 먹고 살 길 막막해서/시작했던 일/ 섬마다 강냉이 튀박하러/ 다니며 살아낸 아픈 세월/ 사람들은 진짜/ 나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강냉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 이름/ 들을 때마다 아프다/ 진짜로' '눈 수술 받던 날 조순○. 언제부턴가/ 안개가 뿌옇게 덮인○/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젊어서 모진 고생하다/ 볼 꼴 못 볼 꼴 보아서/ 그랬을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예쁜 것만 보고/ 바른 것만 보며…'

10년 전 서피랑 먼당에는 "소주 한잔 하고 가시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일균 기자

회관으로 들어가 할매들에게 여쭸다. "이 시들 할무이들이 쓰신 게 맞습니꺼?" "그라먼! 우리가 썼지 넘이 썼이까?" 바로 면박이 돌아왔다. "3년 전에 경상대에서 학생들이 1년 동안 한글학교를 했다 아이가. 거기서 한글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가 쓴 거 아이가."

서피랑 먼당에서 통영토박이 최정규 시인이 10년 전에 말했다. "여기서 통영 전체를 보지요. 본래 뚝사가 있었어요. 삼도수군통제사의 깃발 중에서 최고였던 '원수 기'를 모셨던 사당이었죠. 그래서 여기가 '뚝지먼당'이 된 거예요." 그때 시인은 "먼당 동쪽으로 보이는 통제영 본부 '세병관'을 정점으로 성곽이 구축됐고, 동서남북의 성문 안쪽이 본래의 통제영 위치였다"고 했다. 서피랑에서 통영 전체를 조망한 것이다. 세병관 산복도로로 자리를 옮긴 그는 다시 말했다. "여기에 서야 통영의 진면목을 보았다 할 수 있지요. 실질적으로 통영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통제영으로 도시의 중심이 분명해졌고, 또 이를 매개로 19세기부터 서양의 문물을 다른 곳보다 빨리 받아들였지요. 윤이상이나, 박경리나 통영의 예술인들이 출중한 이유가 통영의 문화적 토양이 뚜렷하고,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인 데 있습니다."

2017년 서피랑 먼당에는 사람도 골목도 없다. 공원이 들어섰고, 멀리 서포루가 섰다. /이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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