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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품은 습지, 이제 우리가 다가갈 때

[습지 문화 탐방] (20) 에필로그
25곳 마흔여섯 차례 탐방…역사·문화 자취 더듬어
근대적 토목기술 발달로 '인간-습지'관계 멀어져
자연생태 망가지면 앙갚음 "거리 좁히는 노력 필요"

공동취재단 pole@idomin.com 2017년 12월 26일 화요일

올 한 해 습지문화탐방을 하면서 스물다섯 군데 습지를 마흔여섯 차례 찾았다.

습지는 젖어 있는 땅이다. 물과 땅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얘기다. 물과 땅이 함께하니 손쉽게 여러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습지를 중심으로 생명들이 모여 살면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을 이루었다. 습지가 우리 인간에게 처음부터 삶터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습지가 인간에게만 삶터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모든 생물들의 삶터였기에 인간에게 삶터가 될 수 있었다.

인간은 습지에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창녕 부곡면 비봉리 8000년 전 신석기시대 습지 유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습지에 살면서 갯벌 또는 바다와 강에서 갖은 조개와 물고기를 잡아 먹었다. 억새 따위 우거진 초원에서 멧돼지나 사슴을 사냥했다. 가래와 도토리 같은 나무열매도 채집해 먹었다. 풀에서 생기는 열매 또한 마찬가지였겠다.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데 쓰이는 연장도 만들었다. 나무로 배를 만들었고 풀로 망태기를 짰다. 그릇은 흙으로 빚었고 낚시도구는 동물뼈나 돌로 만들었다. 먹을거리가 거기 있었기에 인간 삶의 모든 국면이 습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습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있을 수 없었다. 식물과 동물이 자기한테 주어진 생명을 다하고 스러지지 않으면 뒤이어 다른 생명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이 메마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으면 시신을 땅 속에 묻어 장사지내는 문화가 생겨난 뒤에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고성 마동호갯벌 가까운 들판 가운데 솟아 있는 고인돌, 고성 검포갯벌에서 멀지 않은 내산리고분군, 창원 주남저수지 근처 다호리 고분군을 보면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이고 죽는 전투조차 습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서 일어났던 이순신 장군의 숱한 전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남해 바닷가나 낙동강 강가에 이제는 흔적조차 희미한 옛 산성을 두고 하는 얘기 또한 아니다. 함안 성산산성이나 창녕 화왕산성처럼 유사시 전투에 대비하여 산마루에 쌓은 산성이 모두 습지를 확보하고 있다. 아무리 지키기 좋고 전투에 유리한 고지라 해도 물이 나는 데가 없으면 안 되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지와 인간의 이와 같은 관계가 더이상 유지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습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근래 100년 사이에 갑작스레 그렇게 되었다. 근대적 토목기술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쌓는 제방은 더욱 높아졌으며 저수지는 더욱 커지고 많아졌다. 흐르는 강물을 곳곳에서 현대식 댐을 지어 가두게도 되었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에서 습지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수도꼭지가 그 상징이다. 물이 나는 습지를 가까이에 두어야 할 까닭이 없어졌고 그것을 잘 가꿀 필요도 없어졌다. 또 벼논에서 난 쌀로 밥을 지어 먹고는 있다. 하지만 벼논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이미 일부 극소수가 되어 있다.

습지문화탐방은 습지 그 자체에 초점이 있지 않았다. 습지에 인간의 역사와 문화 어떤 것이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습지에 남은 인간 역사와 문화란 인간이 습지와 관계하고 교섭한 자취였다. 화해와 협력, 대립과 갈등, 타협과 공존이 모두 있었다. 어느 한 쪽의 승리나 패배도 있었다.

무엇이든 일상에서 멀어지고 필요가 덜해지면 관심도 줄게 마련이다. 관심이 줄면 무시하기 십상이고 무시가 일상이 되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런데 습지를 비롯한 자연생태는 망가지면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고 한다. 작용을 멈추는 파업은 할 줄 모르지만 인간에게 받는 만큼 돌려주는 보복은 할 줄 안다는 얘기다. 우리가 습지와 자연을 보호하자는 근본 취지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습지나 자연은 인간이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몇 만 배 강하고 튼튼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인간은 습지를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습지는 인간이 없어지면 더 좋아질지 모른다.

오랜 옛날부터 맺어왔던 습지와 인간 사이의 이런 관계가 근본에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멀리 떠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습지에 매인 존재가 인간이다. 습지에게서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면 습지가 더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습지를 더이상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거리부터 좁히고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천시 광포만 풍경.

습지와 거리를 좁히고 관심을 가지려면 자주 찾아가서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 조건을 보면 습지를 자주 찾아갈 까닭이 별로 없다. 옛날에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습지를 가까이에 두고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부러라도 가야 한다. 그러려면 습지를 찾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습지를 습지 그 자체로만 바라보아도 좋은 사람은 좋다.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재미는 좀 덜할 것 같다. 습지가 품고 있는 우리 인간의 역사와 문화까지 더해지면 습지를 찾는 발걸음에 즐거움이 좀 더 실리지 않을까 모르겠다. "습지야, 놀자!" 하는 목소리가 좀더 커지고 많아지면 좋겠다. <끝>

주남저수지 주남 돌다리.
밀양 재약산 사자평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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