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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정성스럽게' 남기자

[기록의 힘]도전과 응전의 역사
사진·합의문·행정박물 등 남북정상회담 수많은 기록
민족 평화·번영 위해 활용, 남은 기록 충실한 관리 중요
인류사회 밝혀주는 계기로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webmaster@idomin.com 2018년 05월 04일 금요일

우리 민족의 도전과 응전의 장벽이었던 분단의 선을 65년 만에 넘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위대한 역사는 저절로 창조되고 기록되지 않으며 그 시대 인간들의 성실한 노력과 뜨거운 숨결의 응결체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가 민족의 화해단합과 평화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창조해 놓아야 할 모든 것, 창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해놓음으로써 자기 역사적 책임과 시대적 의무를 다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에는 외풍과 역풍이 있을 수 있고 좌절과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통이 없이 승리가 없고, 시련이 없이 영광이 없듯이 언젠가는 힘들게 마련되었던 오늘의 이 만남과 그리고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민족의 진로를 손잡고 함께 해쳐간 날들을 즐겁게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회담도 저절로 창조되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수많은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역사적 만남은 생중계되었고 남과 북,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함께 환호했다. 그들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 되었다.

문 대통령이 27일 군사분계선을 넘은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 뒤로 남북 취재진이 있다. /연합뉴스

기록관리 업무를 하는 자의 눈으로 본 정상회담은 투명했고 철저했다. 두 정상이 도보 다리에서 연 44분간 단독회담의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 자체가 기록되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이 상황을 주도한 그분들의 기록정신으로 스스로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수많은 기록이 생산됐다. TV, 라디오 생중계라는 영상기록, 두 정상과 두 나라의 만남을 실시간 촬영한 사진기록, 합의문과 상호 간에 주고받은 선물인 행정박물, 그간 이 회담을 위해 서로 간 주고받은 문서 등, 두 정상의 만남은 신중했으며 기록은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정성스럽게' 생산되었다. 굳이 기록학을 공부한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치를 인정받는 그 기록들은 보존되고 관리되어 앞으로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활용되리라 생각된다.

기록은 역사의 증거다.

이번 회담을 통해 나는 기록과 역사의 연결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기록학을 공부할 때부터 생각한 것은 역사와 기록은 수레바퀴처럼 맞물리는 학문이지만 그렇다고 완전체는 아니었다. 그동안 나에게 역사라는 학문은 근접하는 것이 외람될 만큼 조심스러웠고 역사의 한 부분일 수 있는 기록을 잘 관리하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했다. '기록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 터득한 스스로 이해도를 기초로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 후 남은 것은 누군가가 그 기록을 활용하여 각자의 의견대로 역사의 그림을 그릴 것으로 생각했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장소인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긴 방명록.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다. /연합뉴스

아널드 J.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들이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인생에 하나의 목표를 가진 다른 행복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도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하셨다는 신의 소명 속에서 자기 사명을 발견한다. 사물을 보는 각도는 수도 없이 많지만, 역사가의 시각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역사가의 시각이 우리에게 특별히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쉼 없이 진행되는 신의 창조 활동을 밝혀 보여주는 것이다. 신의 활동은 인간의 경험에서 볼 때 6차원의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략) 창조적 불꽃이 타오르려면 도전과 함께 응전이 있어야 한다."

현대 학문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역사가의 시각은 역사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중 하나에 불과하나 (역사는) 신의 창조활동을 밝혀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곧 역사는 각 분야의 부분이며 전체로서 인류사회를 밝혀 준다는 것이다.

기록과 역사의 연결성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나의 기록관리는 편협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해가 없다면 남은 기록을 활용하는 도민들에게 잘 관리된 기록이 주는 효과 중 하나인 정체성 확립은 고사하고 장님 코끼리 코 만지듯 전체의 부분만을 보여 줄밖에 없을 것이다. 기록의 한계를 알되 한계라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기록을 역사의 충실한 현장으로 재현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역사와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적다. 요즘 내 주위에서 내가 가진 그 조심스러운 것들을 단기의 판단으로 쉽게 팔아버리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면전에서 말하지 못한 소심함이 부끄럽지만 지면을 빌려 용기 내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합의문 발표를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를 누가 판단하는가? 기록원은 경남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말하는 곳으로 흔히 역사를 관리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판단은 E. H. 카의 말처럼 '역사와 역사가의 끊임없는 대화'로 역사 판단의 대상은 현재 여기에 서 있는 기록연구사, 역사전문가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나 기타 역사와 관련 있는 기관의 고위 관계자가 단기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시간의 흐름을 겪으며, 지속된 대화를 통한 여러 의견(출판 매체)을 통해 합의된, 혹은 합의되지 못한 결과물들일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인간의 삶을 뛰어넘을 만큼 과도하게 추앙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고려 없이 단기적 사고로 판단할 내용도 아니다. 역사는 인간의 삶 중 일부분이며 전체일 수 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과거를 비출 수도 없다. 누구도 그 말을 할 자격은 있지만 씹다 버리는 일회성 유흥도 아니다.

삶의 오류는 지나치게 빠른, 느린, 잘못된 생각과 판단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교정의 기회는 항상 있다. 내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시작은 그것일 것이다. 역사를 말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단기적 판단으로 누군가에겐 전부가 될 수 있는 '역사와 기록'을 함부로 논하지 마라.

혹시 이 말이 나의 무지라면 깨우쳐주시라. 달게 받겠다.

이번 정상회담의 감동을 통해 나는 기록과 역사의 연결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정상회담으로 남은 기록은 앞으로 역사의 부분이나 전체로 활용될 것이며 지금과 이후의 판단은 다를 수 있으니 '정성스러운' 평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물론 지금의 여러 판단도 역사의 부분으로 기능을 해 전체를 형성할 것이지만 막말은 삼가 주시라. 여기 기록학과 역사학을 인생 전부처럼 배우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앞서 언급한 정상회담의 "위대한 역사는 저절로 창조되고 기록되지 않으며 그 시대 인간들의 성실한 노력과 뜨거운 숨결의 응결체"라는 내용과 아널드 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의 내용 중 "창조적 불꽃이 타오르려면 '도전'과 함께 '응전'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은 일맥상통한다. 북한에서 이 책을 읽고 그 글을 썼는지, 아니면 도전과 응전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이기에 그 내용이 연결됐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판문점 회담은 그 '도전과 응전'의 모습이었고 나와 우리는 매일 그 '도전과 응전'의 삶을 살고 있다.

이 도전과 응전이 편협해지지 않도록, 역사가 우리의 무지로 빚어낸 자의적인 판단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 후에 도출된 결과물은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타인의 이해를 불러내는 '정성스러운' 역사가 될 것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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