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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서 피어난 우정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6) 몽골 바앙홍고르 소년의 가족
물·전기 끊기고 갈 곳 없을 때 손 내밀어준 몽골 사람들
아들도 동갑내기 사귀고 한 식구처럼 계곡 놀러 가기도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05월 15일 화요일

우리나라만큼 물을 편하게 쓸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과연 몇 나라나 될까? 지형적 특성상 산이 많아 계곡이 생기고 물이 한곳으로 모이기 쉬운 구조 덕분이기도 하지만, 물관리 즉 '치수'를 잘해서 집집이 불편함 없이 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을 마음껏 쓰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여행을 한 후 더욱 느꼈다. 특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마주하는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물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몽골의 바앙홍고르라는 남부도시에 도착했을 땐 호텔마저도 물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게다가 전날 내린 벼락으로 도시 전체에 전기마저 끊긴 상황이었다. 어느덧 해는 슬슬 져 가는데 아들 지훈이와 나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길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렇게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아기를 안은 부부가 탄 승용차 한 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들과 내가 길가에 털썩 앉아 있는 게 안 돼 보였나 보다.

지훈이(오른쪽)와 부제, 그의 여동생. /시민기자 최정환

몽골말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서툰 몸짓언어로 물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기네 집으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바앙홍고르 시내 언덕을 올라가는데 도시 안에도 모래밭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몽골은 수도인 울란바토르 말고는 도시라고는 하지만 개발이 안 된 곳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의 집은 도시 속에서 게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당 문을 열고 한쪽 옆에 오토바이를 주차했다. 울타리 안에는 두 채의 게르가 있었는데, 한 채는 이들 부부가, 또 다른 한 채에는 이들 양가 어머니 두 분이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물이 귀한지라 샤워는 엄두도 못 내고 물 몇 바가지 얻어 얼굴에 묻은 모래와 먼지를 씻어냈다. 아기의 아빠는 지역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를 한다고 했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있으니 아기의 엄마가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고 게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안으로 들어가니 몽골식 국수요리와 양고기를 내어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 촛불을 밝히고 식사를 하는데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식사를 하며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몽골인과 한국인의 유사한 생김새와 아주 오래전 과거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기의 아빠가 악기 하나를 들고 나왔다. 악기 머리모양에 말 모양의 장식이 있어 '마두금'이라고 불리는데 크기는 통기타보다 조금 작았고 연주법은 첼로와 흡사했다. 촛불 아래에서 청아한 마두금의 소리가 게르 안에 가득히 울려 퍼졌다. 연주실력도 제법 훌륭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맑게 갠 하늘을 보고 천천히 짐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만나자고 약속을 나눈 후 그들을 뒤로했다. 난처할 때마다 도움을 받는 고마운 상황이 항상 따라다니는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바앙홍고르에서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는데 도심을 벗어나자 본격적인 비포장길이 시작되었다. 몽골 비포장길의 특징은 하나의 길이 이정표도 없이 갑자기 세 갈래 네 갈래로 나뉜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길이 계속 생겨 잘못하면 다른 길로 빠질 수 있어 조심스러운데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어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오로지 감각으로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데 다행히 다른 길로 빠진 적은 없었다.

비포장 길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뒤에는 아들이 타고 있어 넘어지면 큰일 난다 싶어 조심조심 집중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가다 쉬다 반복하며 약 200㎞쯤 달렸을까? 눈앞에 그리 크지 않은 다리가 하나 나오고 맑은 샛강이 흐르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을 제대로 씻을 수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아들 지훈이와 함께 강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허리 높이까지 오는 샛강에서 지훈이와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았다.

다시 앞으로 출발하려니 힘도 빠지고 해서 근처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쉬고자 샛강 근처에 있는 작은 상점으로 가서 먹을 걸 사고 상점주인 할머니에게 근처에 안전하게 텐트 칠 만한 곳이 있느냐며 손짓 발짓으로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옆 건물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할머니가 데리고 온 사람은 그분 딸인 듯한 아주머니였는데 놀랍게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어요?"하고 인사를 건네 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한국에서 대전에 있는 공장에서 5년간 일을 하고 작년에 다시 몽골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몽골 시골 중에서도 시골인 척박한 땅에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게 신기했다. 아주머니에겐 지훈이와 동갑인 아들이 있었다. 이름이 부제라고 했다. 부제와 지훈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다. 부제의 어머니 도움으로 상점 뒷마당에 안전하게 우리가 기거할 텐트를 쳤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김치찌개를 해줘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의 상점 뒤에 조그만 창고를 짓고 있었는데 일꾼을 불러서 짓는 게 아니라 부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외삼촌 등 가족들이 힘을 합쳐 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출발하려니 전날 음식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훈이와 나는 그들의 일을 돕기로 했다. 창고 건축은 벽채가 거의 다 올라가 있어 지붕만 올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키가 좀 큰 관계로 각종 지붕공사 자재를 손쉽게 위로 올려 줄 수 있었다. 지훈이와 부제는 창고 주변 정리 정돈을 도맡았다. 의사소통은 별걱정 없이 오로지 눈치 하나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여행자가 가던 길을 안 가고 일을 도와주니 그들도 재밌어했고 능률도 올랐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다 같이 우리가 물놀이를 했던 샛강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여성들은 집안 빨래를 들고 와 빨래를 했다. 어릴 때 보았던 몇십 년 전 우리의 모습을 이곳에서 보는 것만 같았다.

여행하는 동안 지훈이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한국에서 가져간 자동 이발 기구를 꺼내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었는지 부제의 할아버지, 아빠, 외삼촌이 와서 머리를 잘라 달라고 했다. 좋은 실력은 아니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들 지훈이가 몽골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부제, 그리고 이웃 아이들과 함께 초원에서 추억을 쌓았다. /시민기자 최정환

이틀에 걸친 창고 공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할머니의 작은 상점에 새로운 창고가 생겨서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았을까? 할아버지가 웃으며 한턱낸다며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도시가 아니니 근처에 식당이나 술집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부제의 외삼촌이 몰던 미니버스를 타고 따라나섰다. 식구들을 다 태운 미니버스는 근처 아주 깊숙한 계곡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길도 없는 곳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참을 타고 가니 주위에 기암괴석이 펼쳐진 계곡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장작불을 붙이고 돌을 달궈 울란바토르에서 먹어봤던, 귀한 손님이 온다면 내어준다던 몽골전통 양고기요리 '허르헉'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가 몽골인인지 한국인 인지 모를 정도로 지훈이와 나는 그들과 가족이 되어 있었다.

부제 가족과 함께 계곡으로 놀러갔을 때 모습. 우리는 어느새 가족처럼 지내게 됐다. /시민기자 최정환

4일간 지훈이는 부제와 근처 계곡에서 도마뱀을 잡기도 하고 나무막대로 야구배트를 만들어 야구놀이를 하며 재밌게 지냈다. 그들과 가족처럼 지낸 후 마지막 날 아침 떠나려는데 부제의 아버지가 특별한 선물을 했다. 몽골에 와서 많이 보았던, 몽골 사람들이 입는 몽골 전통 의상이었다. 부제의 할머니는 당신의 상점에서 팔아야 할 물건인 보드카 한 병과 한국라면 3개 그리고 지훈이 먹으라고 과자랑 사탕을 한가득 챙겨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오토바이에 묶어서 돌아서는데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곳 몽골에서 피보다 진한 우정의 새로운 가족이 또 생겼다. 여행하며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건 뜻밖의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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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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