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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 찾느라 끙끙…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8) 카자흐스탄
외스케멘서 만난 여성 라일라, 유심 구입·시내 구경 도와줘
알마티 민박집 경북대 학생들 푸짐한 한국음식 선물해 감동
끝없는 지평선 따라 사흘 이동…차린 협곡에선 오랜 세월 실감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06월 12일 화요일

러시아에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온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의 12배에 달하는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이지만 인구는 20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토 대부분이 스텝 지역으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이다. 구소련 시절 연해주에 있는 우리 한민족이 소련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된 아픈 역사를 가진 땅이기도 하다. 그들은 고려인이라고 불린다.

국경을 통과하여 100㎞를 내륙으로 들어와 외스케멘이라는 제법 큰 도시에 닿았다. 여행하면서 우리만의 여행 노하우가 하나둘 늘어갔다. 국경을 넘기 전 그 나랏돈을 최대한 소비하는 것도 하나다. 남은 돈만큼 국경 근처에 와서 식료품을 사고,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주유소에서 동전까지 다 사용해 주유를 한다. 그런 후 다른 나라로 넘어오면 다시 현금인출기를 찾아 현지 돈을 뽑아야 한다. 옛날보다 여행이 편해진 것 중 하나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현금카드 한 장만 있으면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가 있다.

여행할 때 꼭 필요한 게 현지 휴대전화 유심카드인데 현지에서 통신이 안 되면 숙소 예약이 힘들어지고 또 휴대전화에 내려받은 지도를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렵다. 러시아와 몽골에서는 우리나라 여권만 보여주면 쉽게 유심카드를 살 수 있었다. 당연히 카자흐스탄에서도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인터넷 정보로는 외국인도 별 어려움 없이 현지 휴대전화 유심카드를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실상은 달랐다.

외스케멘서 우리를 도와준 라일라 씨와 아들 지훈이.

도시 내에 휴대전화 통신사 매장을 몇 군데 방문해봤지만 외국인에게는 팔 수가 없다고 했다. 아들 지훈이와 나는 제법 큰 쇼핑몰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쇼핑몰 앞에서 더는 어쩌지도 못하고 난처해하고 있을 그때 우리를 지켜보는 카자흐스탄 현지인 여성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아주 젊고 예쁜 분이었다. 이름이 라일라였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쇼핑몰 안 통신사 매장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증을 이용해 우리의 유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라일라는 우리에게 "당신들은 관광객이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에게 속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을 달라"며 연락처를 건넸다. 라일라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라일라가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카자흐스탄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휴대전화 번역기 어플을 이용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라일라는 미용기술을 배우는 아가씨였다.

현지에서 유명한 식당인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음식도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에 라일라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우리에게 외스케멘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고 전통시장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만 만나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들른 나라에는 좋은 사람들만 사는 건지도 헷갈렸다. 어쨌든 나도 한국에 가면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좋은 사람이 돼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다시 카자흐스탄 옛 수도 알마티를 향해 출발했다. 도시를 벗어나니 끝없는 평원이 펼쳐졌다. 앞뒤, 양옆으로는 오직 지평선만 보일 뿐이었다. 정말 끝이 없었다. 2차로 도로 포장상태가 안 좋아 깊이 팬 곳이 많아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오토바이가 전복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루에 수백 ㎞를 달렸다. 같은 장소가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가야 시골마을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카자흐스탄 국경에서.

한번은 시골마을에 들러 잠시 쉬려고 오토바이를 한쪽 옆에 세워 뒀는데 잔뜩 실린 짐의 무게 탓에 오토바이가 한쪽으로 넘어졌다. 하필이면 이곳에서 귀하디 귀한(?) 전신주에 부딪히면서 오토바이 앞 윈드스크린이 두 동강이 났다. 다른 사람들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부러진 윈드스크린을 다시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버리지 않고 뒤에다 단단히 묶은 후 다시 출발했다. 윈드스크린이 없으니 다양한 날벌레들과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3일의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알마티에 도착했다. 알마티는 큰 도시답게 높은 건물도 많이 보였고 듣기로는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 음식도 먹을 겸 인터넷으로 한인민박집을 찾았다. 민박집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것은 부러진 윈드스크린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부품가게를 몇 군데 가봤지만 똑같은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부러진 윈드스크린 두 개를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 케이블타이로 단단히 고정했다. 당분간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묵은 한인민박집엔 한국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경북대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마티농업대학교에서 한글 수업과 태권도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 한국이민자 농장을 방문해 농사일도 도왔다고 했다. 먼 곳까지 와서 뜻깊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숙소에서 만난 경북대학교 자원봉사단 학생과 함께.

우리에게 또 다른 행운도 있었다. 우리가 한인 민박집에 도착한 다음 날 일정을 마친 대학생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학생들이 여기에서 생활하고 남은 라면과 즉석밥(햇반), 참치, 통조림, 음료수 등을 커다란 상자에 가득 채워 아들 지훈이에게 선물로 줬다.

여행을 하며 느낀 건데, 한국 음식은 구하기가 어렵다. 현지음식을 먹다 가끔 먹는 한국 라면 한 개에도 지훈이와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간단히 작별인사를 한 후 중앙아시아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차린 협곡으로 향했다.

민박집에 큰 가방 등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온지라 오토바이 운전이 훨씬 수월했다. 200여 ㎞를 달리니 멀리서 평야 한가운데에 구렁이 형태의 구불구불한 깊은 계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생겨난 계곡은 기암괴석이 즐비했다.

차린 협곡에서 지훈이.

카자흐스탄 화폐 중 가장 큰 금액인 1만 텡게 뒷면에 차린 계곡이 그려져 있다. 기암괴석 사이로 요즘에도 간간이 화석이 발견된다고 한다. 한나절 차린 협곡 관광을 마치고 다시 알마티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짐을 싸서 키르기스스탄으로 향했다.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슈케크는 하루면 닿을 수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 고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여름인데도 눈이 쌓인 높은 산맥들이 멀리서 천천히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글·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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