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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장서 경험한 인격 훼손, 그날 하루 모든 걸 망친 느낌

[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세이-면접

시민기자 황원식 webmaster@idomin.com 2018년 06월 18일 월요일

공무원 시험 포기 후 삶이 끝없이 무기력해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사회복지기관에 이력서를 넣었다. 집과 가깝고 월급도 괜찮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아무 곳이나 좋으니, 그곳에 누구라도 사람만 있으면 상관없었다. 나 혼자만 아니면 되었다.

얼마 후 그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서류심사 할 때 이력서, 등본, 자격증 등 여러 가지 서류를 첨부했다. 그때 프로포절(프로그램 제안서)을 가져오라고 했다. 새로 프로포절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간단한 서류조차 작성할 의욕이 없던 때였다. 대학 때 과제로 억지로 했던 프로포절을 가져갔다.

면접 당일 정장을 입고 시간에 맞춰 면접장에 도착했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누군가 왔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중년 아저씨였다. 그는 내 이력서를 보더니 반말로 말했다.

"나이가 많네."

"아… 네 졸업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왔습니다."

프로포절을 훑어본 다음 그는 말했다.

"근데 프로포절이 왜 이 모양이야! 성의도 없고, 현실성도 없잖아?"

"죄송합니다, 제가 예전에 적었던 걸 그대로 가져와서요."

한참을 프로포절에 대해서 질책하더니 갑자기 "여자친구 있나?" 하고 묻는다.

사적인 질문에 당황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따질 경황이 없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얼마 전에 헤어졌습니다."

"보나 마나 차였겠지. 왜 차였는지 알 것 같다. 쯧쯧. 남자가 이렇게 패기가 없어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노? 나는 너 같은 사람이 제일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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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 /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동안 그의 쩌렁쩌렁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내게 정신 차리란 것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뽑으면 그만이지,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왜 내게 막말을 하는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바보처럼 듣고만 있었다. 그때는 정신이 혼미했다. 그곳을 나오니 그제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내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는 서류 몇 장으로 내 인생을 통째로 깔아뭉개었다. 지금도 얌전히 그 자리를 나왔다는 것이 후회로 남는다. 세상에 그런 나쁜 어른이 있다니. 이런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의 성장이나 좋은 미래에서 찾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누구보다는 낫다'라는 그 사실 하나로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 남들을 비하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보다 한참 어린 힘 없는 면접생을 앞에 두고, 자기 권력 이용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이런 곳에서 일 시켜줘도 안 합니다. 당신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불쌍하네요. 남의 인생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사세요.'

심리학 수업 때 '전치(displacement)'를 배운 적이 있다. 전치는 원래의 대상에게 주어야 할 감정을 덜 위험한 대상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사에게 혼나서 화난 감정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가족에게 면박을 받거나, 무시당한 것을 나에게 푼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됨됨이를 볼 때 충분히 그럴만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에게 화나던 마음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그래, 그도 불쌍한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 자기도 인생이 얼마나 안 풀렸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그 일을 잊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합격이 아니었다. 기억나는 모든 순간들이 잔인했다. 나는 등본 떼려고 동사무소도 갔고,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에도 갔다. 자격증 출력하고, 졸업증명서 출력하는 데 돈은 왜 그리 비싼가. 백수라 돈도 없는데. 서류상의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지 말든가. 아침부터 사람 오라 가라 하고. 그날 하루 기분 망치고, 할 일도 못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복지관에서는 내 등본이랑 이력서는 돌려주지도 않았다. 다음 면접 볼 때 또 내 시간 들여 동사무소 가고, 내 돈 들여 서류를 출력해야 했다. 이 사실 하나에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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