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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렬의 생태이야기] (41) 고라니와 노루는 죄가 없어요!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mrbin77@hanmail.net 입력 : 2018-07-02 14:17:06 월     노출 : 2018-07-02 14:37:00 월

"할매! 저거는 무슨 소린데예?"

"응! 옴마 말 안 듣고 자꾸 울어쌋는 아그들 업어가는 소리제."

"니도 말 안 들어모 저러코롬 업어 가뿐데이."

"아이고 무서버라! 지금 불러서 업어가라 하까?"

할머니의 은근한 협박에 울음은 뚝. 심장은 쿵쾅쿵쾅. 손자는 갑자기 착한 소년이 된다. 그 사이 이상한 울음소리는 어둠 속으로 점점 멀어져 간다. 언제쯤이었을까? 아주 어릴 적 아련한 기억 속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할머니는 조선시대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해 주셨다. 밤에 불쑥 나타나 아이 업어가는 고라니 이야기, 사람을 끈질기게 졸졸 따라오다 쉬고 있는 지게 위로 흙을 퍼서 던진다는 여우 이야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의 해님 달님 호랑이 이야기도 간혹 들려주셨다. 무서움에 떨면서 밤마다 들었던 옛날이야기 들이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무서운 고라니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 고라니의 생태를 조금 알고서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었다. 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고라니 울음소리는 흉하기로 유명하다. 마치 악을 쓰면서 비명 지르는 사람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군대에서 철책 근무 서다 어둠 속에서 들었던 고라니 소리도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 소리처럼 들렸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 고라니 소리에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무슨 소리인지 정체를 모르고 들으면 놀라서 기절초풍할 정도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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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고라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이상한 울음의 주인공 고라니는 우제목 사슴과의 포유류다. 비슷한 종으로는 사슴과 노루가 있다. 외모는 비슷하나 종은 전혀 다르다. 고라니는 순우리말이다.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분명하진 않으나 삐죽하게 나온 송곳니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라니는 노루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집이 작아 '보노루', '복작노루'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어금니노루'라는 의미로 아장(牙獐·사향노루)이라고 부른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전 세계적 멸종 위기종이다. 19세기 말부터 전시와 사육 목적으로 중국 고라니들을 영국과 프랑스에 도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어 이름은 '워터 디어(Water deer)'. '물사슴'으로 불린다. 외국인들이 중국 양쯔강 지역에서 고라니를 처음 발견했을 때 물가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고라니는 중국 동부 지역에 분포하는 중국고라니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는 한국 고라니가 있다.

고라니 수컷은 크고 아름다운(?)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툭 삐져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외모 때문에 '흡혈귀 사슴(Vampire deer)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송곳니는 서열 다툼할 때나 암컷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결투에 사용한다. 툭 튀어나온 송곳니 때문에 얼핏 보면 초식 동물이 아니라 육식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동물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날카롭고 단단한 뿔이나 이빨, 손·발톱을 가지고 있다. 또 빠른 발, 강인한 근육을 지닌 동물도 있고 주변 지형과 쏙 빼닮은 보호색을 지닌 동물도 있다. 고라니가 가진 무기는 껑충껑충 뛰는 튼튼한 다리와 송곳니다. 보통의 수사슴과 노루는 뿔을 가지고 있는데 고라니는 뿔 대신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고라니와 사향노루는 송곳니. 사슴과 노루는 뿔을 가지고 있다. 또 고라니와 노루의 구분법으로는 엉덩이가 흰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라니를 노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들판에서 고라니와 노루 구별하기가 쉽진 않다. 뛰어가는 뒷모습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데 엉덩이에 흰 무늬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꼬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 노루, 그냥 회색에 가까우면서 꼬리가 있으면 고라니다. '고라니궁뎅이'가 아닌 노루궁뎅이버섯이란 이름도 그래서 생겨난 모양이다.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에서 보면 송곳니가 먼저였고 다음이 뿔이었다고 한다. 고라니가 사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살아온 동물이란 뜻이다. 고라니는 풀이 많은 평지나 키 작은 나무가 우거진 야산 지역을 특히 좋아한다. 뿔보다는 송곳니가 더욱 쓰임새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빽빽한 갈대밭 같은 서식지에서 다른 수컷 고라니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 위한 수단이 송곳니였던 것이다. 낮에는 주로 휴식을 취하고 밤에 활동하는데, 주된 활동 시간대는 저녁 6시에서 오전 6시 까지다. 특히 새벽 3~4시에 가장 활동성이 높다고 한다.

고라니의 송곳니는 가을에 나기 시작해서 이듬해 봄까지 전체 크기의 절반 정도 자란다. 생후 18개월에서 2년까지 계속 자라는데 길게 자라면 7cm가 넘게 자란다고 한다. 암컷도 송곳니가 자라긴 하는데 너무 작은 데다 입술에 덮여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송곳니는 수컷 고라니의 세력권을 표시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땅 위 약 50cm쯤에 서 있는 나무줄기를 송곳니로 꺾어 껍질을 벗겨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다. 내 영역에 들어오면 날카로운 송곳니로 혼을 내겠다는 위협의 표현이면서 건강한 암컷 고라니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애정 표시용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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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가를 서성이는 고라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야생 '고라니 잡아먹으면 3대가 재수 없다'는 미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얘기다. 설령 농작물을 해치는 나쁜 행동을 보이더라도 잡아먹지는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고라니는 해치지 말고 그대로 다시 들판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촉촉한 눈망울 보면 보호 본능이 절로 발동한다. 그렇다고 지나친 보호 본능을 발휘하면 고라니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도 있다. 고라니는 12월에서 1월 사이에 짝짓기를 하는데 보통은 4월에서 7월 사이에 새끼를 낳는다. 맛있는 풀을 많이 뜯어먹을 수 있는 시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고라니는 사슴과 동물 중에서는 새끼를 가장 많이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3~4마리쯤 낳는다. 어미 고라니는 보통 풀숲이나 갈대밭, 억새밭 같은 곳에 새끼를 낳는다. 갓 태어난 새끼는 몸에 세로로 줄을 지어 난 흰 점이 있는데 몸 뒤쪽 허리에는 점이 더 많다. 디즈니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아기 밤비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하긴 멧돼지도 새끼 때는 귀여운 모습이다. 노루 새끼도 비슷하게 태어나는데 2개월이 지나면 흰 점이 옅어지기 시작하면서 무늬도 사라진다.

새끼들은 3~4마리가 무리 지어 다니지 않고 한 마리씩 따로 떨어져 풀숲에 엎드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정 거리를 두고 한 마리씩 독립적으로 기르는 습성을 보이는데, 천적에게 노출되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고라니의 이런 생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따로 떨어져 있는 새끼를 애써 구조해 어미와 생이별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라 할 만큼 귀한 고라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현재 중국에는 일부 제한된 지역에 1만여 마리의 고라니가 살고 있어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유해 조수로 취급되어 전국에서 매년 수많은 수의 고라니가 포획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고라니 수의 '조절'이 과학적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확한 근거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또한 멀뚱멀뚱 도로 위에 나타나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문제다. 농촌의 도로, 특히 야산이 인접한 지역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중간에 갑자기 툭 튀어 나와 차 쪽을 쳐다보고 있는 고라니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고라니는 야간에 충분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홍채를 개방하는데 이때 과도한 빛에 갑자기 노출되면 모든 광 수용기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일시적으로 눈이 멀게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슴류는 갑작스런 변화가 감지되면, 잠시 주춤하며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려 한다. 이때 빠른 속도로 차량이 접근하면 그대로 차에 치이고 마는 것이다. 로드킬을 많이 당하는 이유가 바로 고라니의 이런 특성에 있었던 것이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도 큰 문제 중 하나다.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상위 포식자. 즉 천적이 없다는 것이 고라니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다. 사람과 고라니, 야생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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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에 나타난 고라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어쨌든 전 세계적으로 보면 고라니는 멸종 위기 야생 동물에 속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 목록에서 고라니는 멸종위기인 '취약'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사자, 하마, 치타와 같은 등급이다. 서식지가 한국, 중국 등으로 매우 좁다 보니 의외로 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고라니는 영화 '부산행' 처음 부분에서 로드킬을 당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동물로 나오기도 한다.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는 온순한 초식 동물이다. 먼 거리까지 헤엄쳐 이동하기도 하는데,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과 함께 공존해온 동물이기도 하다. 먼 옛날 범과 표범이 자주 출몰하던 시기에는 개체 수가 자동적으로 조절되었을 터인데 천적이 사라지고 난 후부터는 상위 포식자에 의한 자동 조절 기능도 사라지고 말았다. 고라니를 사냥 대상으로 삼는 동물은 기껏해야 검독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나 담비, 삵 같은 중소형 포유류인데 이들 야생 동물들도 대부분 멸종위기 종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멧돼지처럼 야산에 인접한 도심 공원, 아파트 주변, 대학 캠퍼스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워하거나 무조건 처치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이 필요한 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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