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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묘] (3) 우리와 그들

나한거사(羅漢居士) webmaster@idomin.com 입력 : 2018-07-03 13:14:52 화     노출 : 2018-07-03 13:37:00 화

1529년 오스트리아 제국 수도인 빈에 투르크족이 들이닥쳤다. 팽창일로 중이던 오스만제국은 중부 유럽의 요지인 빈을 점령, 제국의 성가를 높이고 유럽 방어선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러나 치열한 공방전 끝에 투르크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인을 필두로 마자르인, 슬라브인 등이 혼재하는 다민족 국가였다. 혼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라도 민족 간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한 나라였다. 하지만 빈 공방전 이후 300년이 넘도록 큰 소요는 생기지 않았다. 이교도인 투르크족을 상대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한 결과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이 있었기에 '제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529년 이후에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침입은 오래전 오스트리아가 아바르족이나 마자르족과 변경을 마주하고 있을 때 민족의 심리에 새겨진 '방어기제'가 다시 작동하도록 했다. 무슬림의 위협을 받자 독일, 체코는 물론 헝가리 사람들까지 자기들이 같은 편이고, 따라서 뭉쳐야 한다는 점을 자각했다. 외견상 적인 투르크족이 사실상 제국의 존재 이유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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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벌어진 빈 공방전. 19세기에 활동한 화가 요한 피터 크래프트의 작품.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대외 정복에 나섰던 초기 이슬람은 우마이야, 압바스 왕조를 거치는 동안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페르시아를 장악한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부족 간 대립으로 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라비아는 이슬람교가 등장하면서 하나가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알라와 꾸란'이 아랍 사람들을 '우리'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포교를 목적으로 아라비아를 통일한 이슬람은 넘치는 군사 에너지를 주변국으로 돌리게 된다.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이교도인 '그들'이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란 말은 이슬람 역사를 곡해한 유럽 사가(史家)들이 붙인 문구라지만, 이슬람 정복 전쟁의 한 측면을 묘사한 매력적인(?) 글귀가 아닐 수 없다.

'우리와 남들'을 구분하고 내(內)집단에 속한 구성원을 선호하는 행위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 진화 단계부터 무리를 지어 살아온 인류에게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분하는 행위는 원초적이었다. 내부에 해당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파트너지만 외부자인 '그들'은 대개 경쟁자이거나 침략자였을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잘라 말하면 내부자와 외부자를 동등하게 대했던 조상은 사라진 반면 내부자를 편애한 무리는 살아남았다. 본능적인 위안과 자긍심을 이끌어 내는 집단을 형성하고 경쟁 집단에 맞서 자기 집단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지금도 도처에서 목격되는 현상이자, 인간본성이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게 만든 추동력을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집단 선택이었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경쟁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경쟁은 한 개인을 남보다 유리하게 만드는 형질이 자연 선택되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내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 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결합됨으로써 승자가 탄생했다."

인류의 뇌리에 각인된 이 본성은 작게는 조직과 집단, 크게는 제국을 좌우했으며 그 관성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아사비야'가 있다. 아랍 역사가 이븐 할둔이 <역사 서설>에서 규정한 이 개념은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를 뜻한다. 즉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아사비야를 높이는 건 '공동의 적'인 그들이 경계선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맞설 때다.

미국 언론인인 아나톨 리븐은 "미합중국 국민들이 개척시기에 지녔던 높은 아사비야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주민들이 인디언들과 부딪히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 바 있다.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인디언과 거친 환경이 미국인과 미국 문화를 형성했으며, 이 기제는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뒷받침한 것 중에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불리는 두 가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있다. 전자는 미국인이 신에게 선택받은 이들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미국인이 동부에서 서부까지 북미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주장이다.

지금으로선 황당한 이야기지만 미국 초창기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이데올로기는 양키들을 '특별한 우리'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미국적 아사비야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흡사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Aeneis)>에서 신(神)인 주피터가 다음과 같이 로마제국을 인가했노라고 노래한 것처럼! "이 사람들(로마인)을 위해 나는 물리적 경계도, 시간적 제한도 두지 않겠노라! 나는 끝없는 제국을 부여했노라!"

아사비야는 일견 긍정적인 말 같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 진영에서 봤을 땐 재앙과 다름없는 말이다. 원래 협력과 무자비함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량학살 같은 무자비한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내적으로 긴밀하게 결속된 집단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부족 간 전쟁을 "엄청나게 잔혹한 형태로 진행됐으며 이는 인류와 다른 동물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타 집단에 대한 증오와 이를 이용한 내(內)집단 결속은 '사회적 교양'을 중시하는 유교를 신봉한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도 확인된다. 철학자 한형조 교수는 "문중(門中)의 이름으로, 학통(學統)의 이름으로 자기 조상과 선현을 모시고 존경할 뿐 왜 무엇이 그토록 위대한지, 혹은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 바가 없었다. 누가 누구와 동류이며, 누가 누구를 비판했고, 누가 누구를 모함했으며, 누가 누구에게 설욕했다는 따위의 이력과 은원만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당시 풍조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지금도 비슷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새로운 파당과 분쟁에 불씨를 불어넣는 DNA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본성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건 파시즘이다. 부족 간 전쟁을 국가적, 세계적 차원으로 높인 파시즘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찬양, 인종주의, 완전한 통제에 대한 동경, 영웅적 리더십에 대한 믿음 등을 공통요소로 한다. 그 바탕에는 '우리'라는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파시즘>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은 여기에다 '우리 집단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의 적에 대한 어떤 행위도 법이나 도덕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추상적 보편적 이성보다 리더의 직감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을 추가한다.

현대 역사상 가장 혹독했던 파시즘인 나치즘을 이끈 히틀러는 이런 말까지 남겼다. "세계사의 모든 사건은 종족들이 자기보존 충동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즘을 지탱한 인종주의를 잘 일컫는 말이다. 그는 독일 사람들을 '아리안'이란 조어를 사용해가며 '우리'로 만드는 논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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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우리와 그들로 편을 가르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본성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우리' 구성원들에게 실익을 안기는 것이기도 하다. 잔혹하게 진행된 고대 부족 간 전쟁에서는 약탈행위가 가장 존중받았다. 약탈이 영예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그 집단의 아사비야를 높이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동안 피침략지로부터 수탈한 돈은 대략 1700억 마르크에 이른다. 같은 시기 독일 국내 총수입의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 돈은 나치 야전군을 유지하는 데에만 쓰인 것이 아니라, 일반 독일 민중이 전쟁기 동안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온갖 비과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우리와 그들을 가른 이면에는 이런 횡재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전리품은 독일국민들의 아사비야를 크게 높였고, 여기서 축적된 에너지는 고스란히 학살과 전쟁이라는 참화로 이어졌다.

이슬람의 세계 정복에 불을 붙인 것은 '종교에 의한 아라비아 통일'이란 동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변경을 마주하고 있던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는 부유한 도시들이 많았다. 아랍인들은 군사 에너지를 이런 곳에 집중시켜 한편으론 이슬람 교리를 퍼뜨리고 다른 한편으론 약탈을 통해 전리품을 챙기는 '수지맞는 장사'에 몰두했다.

우리와 그들을 갈라 내부 결속을 도모하고, 나아가 우리에게 이로운 국면을 형성하는 일은 비단 '일국(一國)'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말 서양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영국인과 프랑스인, 독일인의 인종적 개성을 강조하면서도 유럽과 아프리카 관계에 대해서는 유럽이 비유럽지역 민족들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는 '문화적 진화론'을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비서양 민족들의 뇌가 작고 인지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비교해부학과 두개골학을 이용하여 비서양인들이 원시적이라는 증거를 의기양양하게 제시하곤 했다. 케냐에서 활약한 제국주의자 E. S. 그로건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정신적 발전과 윤리적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백인에 비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사실은 원주민을 관찰해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이라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사이비 과학인 인종주의가 제국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아시아권에서는 근대화에 뒤늦게 올라탄 일본이 역으로 '우리' 개념을 확장해 피침략국 국민들을 포섭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태평양 전쟁기간에 일본이 내건 슬로건은 '오족협화(五族協和)'와 '팔굉일우(八紘一宇)'다. 오족은 일본, 한족, 만주족, 몽골족, 조선족을 일컫는 것으로, 오족협화란 만주에서 전쟁을 시작한 일본이 '아시아 민족인 우리끼리 서로 협력해서 사이좋게 지내자(協和)'며 타 민족들을 꼬드긴 문구다.

팔굉일우 또한 '온 세계가 하나'라는 뜻으로, 침략을 미화한 슬로건이다. 따라서 협화나 일우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리는 만무했지만 '모두가 우리'라는 이 슬로건은 침략지 민중들을 현혹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요인은 자연발생적인 것도 있으나, 역사를 더듬어 보면 현대에 근접할수록 지배세력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요인이 불변인양 늘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으로 불렸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투르크족이 더 이상 제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해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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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제국은 이슬람에 귀의하는 이교도가 많아지면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단층선이 희미해지자 그 수명을 다한다. 이슬람이 내건 보편성이 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나치즘은 또 어떤가? 이 광기 어린 '우리'이즘(ism)은 2차 세계대전 말미에 독일군이 수세에 몰리자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민족인 만주족이 17세기 초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중국 전토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자 명나라 유민들 사이에서는 한족 왕조였던 명나라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들이 내건 기치는 '반청복명(反淸復明) 구축달로(驅逐虜)'다. 청나라에 맞서 명나라를 다시 세우고 오랑캐인 만주족(달로)을 몰아내자는 말이다.

유교적 교양으로 똘똘 뭉친 사대부들은 저급한(?) 만주 오랑캐가 문화민족인 중국을 지배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놓인 단층선이 생각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대다수 민중은 부패하고 무능했던 명나라가 '우리'라는 이야기에 반감을 품고 오히려 새 정치를 펴는 강건한 청나라 편에 섰다. 반청복명 운동이 소리 없이 스러진 것은 물론이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자유한국당은 줄곧 북한을 우리를 결속시키는 '그들'로 활용했다. 예전 문법대로라면 이런 대립 구도가 우리 사회 아사비야를 높였겠지만, 시대적 흐름이 남북대치에서 평화로 바뀐 상황에서는 맥을 못 추고 말았다. 대립 전선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여긴 '시대적 착오'가 오판을 부른 셈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오늘에 직접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당시 사람들과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 대중매체, 인터넷과 휴대전화는 역사 속 농경 유목 사회와 현대산업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직접 비교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제국의 탄생>을 쓴 역사가 피터 터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그들이, 양자 사이에 놓인 단층선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던진다. "현대가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옛날식으로 아이를 낳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싸우면서 서로 죽인다.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이방인에 대한 불관용 또한 우리에게 변함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참고도서

·피터 터친, <제국의 탄생>, 웅진지식하우스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사이언스북스

·한형조, <왜 조선유학인가>, 문학동네

·티머시 H. 파슨스, <제국의 지배>, 까치

·콜린 우다스, <분열하는 제국>, 글항아리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교양인

·장대익, <울트라 소셜>,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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