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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진실은 디가우징할 수 없다

'기록물 관리' 누구 맘대로 아닌, 법대로
퇴임 대법관 PC 속 자료 등록부터 폐기·활용까지
개인·정치적 잣대가 아닌 '기록물법'따라 관리돼야
국가기록원 중립 꾀하길…법·상식 따라 일 추진해야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webmaster@idomin.com 2018년 07월 13일 금요일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는 JTBC의 <썰전>이다. 이 프로는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정치 등의 굵직한 이슈들을 진보, 보수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이를 통해 정치에 무지한 내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안들을 배울 수 있다. 지난주까지 유시민 작가가 나왔지만 "잊혀지는 영광"을 말하며, 아쉽게도 떠나고 후임자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나왔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PC 디가우징 논란이었다.

디가우징((Degaussing)이란 자기장으로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복구 불가능하게 지우는 것으로 컴퓨터 내의 모든 자료를 삭제(폐기)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하드디스크) 디가우징은 퇴임 법관 전산장비에 대한 통상적인 업무 처리 절차인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 27조 등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접어두고 내가 주목하는 바는 노회찬 의원이 말한 "대법원장 퇴임 시 PC에 남아있는 자료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추출해야 한다"라는 대목이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에 의하면 "기록물이란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도서·대장·카드·도면·시청각물·전자문서 등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와 행정박물(行政博物)을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같은 조 제3호에 의하면 "기록물관리란 기록물의 생산·분류·정리·이관(移管)·수집·평가·폐기·보존·공개·활용 및 이에 부수되는 모든 업무를 말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퇴임 대법관의 PC 내 자료는 기록물일까? 개인적인 편지, 사진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해서 생산·접수했다면 기록물이 맞다. 또한 기록물관리의 범위에는 생산부터 폐기까지 적시되어 있으니 '폐기(디가우징)'는 이 법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흔히 기록인들은 기록의 '생산'이 시작이 아니라 생산과 더불어 관련기록물을 전자기록생산시스템 등에 '등록'하는 것을 기록관리의 시작이라고 한다. 사람이 출생을 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 그 지역에서 책임과 권한을 누리듯이 기록물도 '등록'이라는 생산자의 행위를 통해 수집, 폐기, 활용 등의 관리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퇴임 대법원장의 PC에 있는 기록이 등록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기록이 아닐까?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기록전문가들의 인지의 범위 내에 들어서 관리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는 있으나 그 자체는 공공기록물이다. 사람이 태어나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해도 태어난 이상 등록번호를 받은 그 사람과 동일한 인격을 가진 귀한 '사람'이듯이 말이다. 단지 다른 것은 번호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공의료 등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뿐이다.

◇PC자료 기록여부는?

기록도 마찬가지다. 그것 자체로는 공공기록물이지만 등록하지 않았다면 생산한 자의 잘못이며, 그 잘못으로 인해 기록이 기록 아닌 것은 아니다.

이상으로 보면 대법원장 PC 내 업무관련 자료는 기록이며 그 기록은 관리되어야 한다. 관리라는 것은 그것의 등록부터 이관, 폐기, 활용까지를 말한다. 즉 해당 자료는 기록임이 확인된 순간(원칙상 생산 직후) 등록되어 번호를 부여받고 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이관 후 보존기간 경과 시, 기록관리전문요원의 평가를 거쳐 폐기 등의 결정을 하게 된다.

더하여 같은 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르면 "대통령·국무총리 및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및 교육장 등 주요 직위자의 업무관련 메모·일정표·방문객명단 및 대화록"은 등록·관리 대상이다. 즉 대법원장인 주요 직위자의 업무와 관련되어 생산·접수된 일체의 자료는 공공기록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과 관련된 논란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기록의 무단유출 및 파기, 지정기록물의 일방적 공개 등 가장 비정치적이어야 할 기록이 정쟁의 한가운데 선 적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모두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비정치적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희생은 너무 컸다고 본다. 예컨대 결혼을 한 부부가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과정인 싸움 중 '티격태격'의 수준이 아니라 물리적·내면적 상처를 가득 안은 채, 헤어지거나 그것을 준비하는 마침표의 수준이었다. 이 싸움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은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거 역사가 훼손, 멸실되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 봉하마을 기록물 유출사건과 관련해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김익한 교수가 한겨레 신문 기사(2008-07-21)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청와대가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주체가 되면서 정치적이 됐다.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에 전적으로 맡겼어야 한다. 또 국가기록원은 그간 언론에서 문제 삼았던 사안들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국가기록원 역할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달리 국가기록원은 민간기록원장 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기록관리'의 정치적 중립을 달성하라는 국민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록과 관련한 논란을 법과 규정, 상식에 맞도록 엄중하게 권한을 행사해 일을 수행하라는 뜻일 것이다. 물론 그 권한의 행사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를 것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그 무거운 책임을 '민간기록원장'의 채용으로 부담을 일부 감소시켜 준 것이라 생각한다.

제도적 장치는 일부라도 마련되었다. '때문에'라는 말은 이제 국민에게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라도 '기록'과 관련된 논란은 계속 일어날지 모른다. 감히 청하건대 그 논란을 비켜가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법과 상식에 맞도록 일을 추진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한발한발 가다보면 맞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겠지만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라는 나의 어머니의 말처럼 선함의 결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이 논란과 관련해서 관할 기관의 공식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일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 대법원장 PC의 디가우징 논란'과 관련해서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 말은 "진실은 디가우징할 수 없다"라고 했다. 우리의 진실이 디가우징 당하기 전에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정성스럽게 수행해 나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하기를 다짐해본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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