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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 (3) 양산

통도사 대웅전에는 왜 불상이 없지?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 부처님의 진신사리 봉안돼, 타 사찰과 달리 불상 없어
북정동고분군 특징 인상적 '충신' 박제상 행적 한눈에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8년 08월 10일 금요일

7월 19일 창원문성고 학생들과 함께 양산으로 역사문화탐방을 떠났다. 아침부터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 야외 활동을 삼가야 했다. 더위가 조금만 덜했어도 낙동강 따라 시원한 강바람을 맞도록 했을 것이다. 낙동강변에는 조선시대 옛길 동래로 가운데 밀양 작원잔도, 문경 토끼비리와 함께 3대 벼랑길을 이루는 황산잔도도 있고 가야·신라 이래로 낙동강 용신에게 크게 제사를 올려온 가야진사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이번에는 덜 더운 오전에 통도사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으뜸으로 꼽히는 불보사찰 통도사

양산 하면 통도사가 맨 앞자리에 놓인다.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가장 중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양산을 과잉 대표하는 부작용도 있다. 양산 친구들과 함께 둘러볼 때는 통도사를 빼기도 하는 이유다. 그러나 실은 그냥 우리나라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라고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오히려 흔치 않다. 통도사의 역사·유래·의의 따위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줄줄이 나온다. 그런 것을 탐방에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절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는 정도만 알아도 된다. 이처럼 진짜(眞) 몸통(身)이 있다 보니 으뜸 전각인 대웅전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불상은 진신을 대신하는 존재라서 그렇다. 그리고 진신은 돌로 만든 금강계단에 사리로 보관되어 있다.

불이문(不二門)에서 대웅전 쪽을 바라보는 모습.

통도사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전각·불상·석탑 등 특징적인 구조물을 찾아 인증샷을 찍도록 했다. 둘째는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을 찾아 자세히 그리기를 하고 셋째는 궁금한 것 하나를 찾아 질문 만들어 오기였다. 인증샷을 찍는 미션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수행을 했다. 자세히 그리기는 열심히 한 품새 치고는 그럭그럭 수준이었다. 자세히 그린 그림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아마도 날씨 때문이겠지. 봄이나 가을, 풍경도 좋고 날씨도 받쳐주는 때 같으면 멋진 작품이 많았겠지만.

질문 만들어 오기는 제도 교육의 한계에 갇힌 듯했다. 통도사의 역사적 의의, 영역 구분의 의미 등 역사책에서 다룸직한 것들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자기가 진짜 궁금하고 신기해서 묻는 질문은 별로 없었다. 신기하게도 초등학생한테 질문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자기가 정말 궁금한 것을 거기 담아낸다. 이렇게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갖고 묻고 답하기를 하면 호기심이 채워지면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제도교육을 받은 기간이 길어지면 질문도 덩달아 생기가 떨어지고 판박이가 되어간다. 틀에 박힌 질문으로는 얻을 수 있는 보람이 적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했다.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를 멋지게 그린 친구와 천왕문을 지키는 사천왕에 대한 질문을 한 친구 등 몇몇에게 상품권을 선물했다.

그늘에 앉아 관음전 등 전각을 보고 자세히 그리기를 하는 모습. 한 학생이 일반 탐방객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산 고분, 형식은 가야 내용은 신라

점심을 먹고는 양산박물관으로 향했다. 양산박물관은 바로 뒤 북정동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들이 중심이다. 북정동고분군에서는 부부총과 금조총이 도드라진다. 첫 발굴은 부부총이 1920년, 금조총이 1990년이다. 부부총 출토품은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금조총은 그렇지 않다.

부부총은 한 무덤에서 부부로 짐작되는 남녀가 함께 발굴되어서 붙은 이름이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죽어서 묻힌 것은 아니고 남자가 먼저 묻히고 여자가 나중에 묻혔음이 1990년 추가 발굴에서 확인되었다. 금조총은 그 아래 조그만 무덤이지만 유물은 많이 나왔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금(金)으로 만든 새(鳥)다리가 특징적이어서 금조총이라 한다.

양산박물관에서는 북정동고분군의 특징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겉은 가야인데 속은 신라다. 가야 방식 무덤에 신라 양식 유물이 들어 있는 셈이다. 양산이 옛적 신라와 가야가 맞부딪치는 접경이었기 때문인데 신라가 가야를 장악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고분이라 할 수 있다.

겉모양은 놓인 자리만 봐도 금세 구분된다. 신라 고분은 경주에서 보듯이 대부분 평지에 있지만 경남·경북 일대의 가야 고분들은 양산 북정동고분군과 마찬가지로 산기슭에 있다. 어렵고 복잡한 축조양식 등의 차이는 나중에 진학해서 전공할 때 따지면 된다. 유물의 차이는 출토된 금관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신라는 산(山)을 세로로 포갠 장식이지만 가야는 풀잎·꽃잎 모양 장식이다. 그리고 부부총에서는 산(山)이 셋 포개진 금관이 나왔다.

◇만고충신 박제상

양산 역사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인물이 박제상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나온다. 신라 박혁거세 후손으로 내물왕 때 양산 일대를 다스리는 왕족이었다.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있던 임금의 두 동생을 구하는 데 목숨을 바쳤다. 특히 일본에서는 신하가 되면 살려주겠다는데도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 수 없고 신라의 매는 맞아도 왜의 벼슬은 받을 수 없다"면서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일본 임금은 갈대를 베어 그 위를 맨발로 걷도록 시키고 귀양을 보내고 불태워 죽인 다음 목을 베었다.

박제상은 시대를 뛰어넘은 충신의 표상이다. 박제상은 지금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왕국이면 임금이 당연히 충성의 대상이지만 지금처럼 국민이 주인인 민국에서는 무엇에게 충성해야 할까. 박제상이야 왕족이고 지배층이었으니 목숨 바쳐 충성할 만했지만 지금 나라에서 받거나 누리는 바가 별로 없는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충성해야 합당할까.

양산박물관은 어린 친구들도 쉽게 되새길 수 있도록 박제상의 행적을 영상 게임으로 만들어 두고 있다. 양산에는 신라 박제상과 더불어 고려·조선 시대 충신 김원현·조영규를 나란히 모시는 삼조의열단도 있다. 어지간하면 잠깐이라도 들렀을 텐데 폭염 탓에 아쉽지만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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