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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15) 깊은 밤 갈 곳 잃은 우리를 초대한 디마

절경에 취하고 사람에 반하고
러시아 부됴놉스크 라이더 배려에 감동
늦은 밤 갈 곳 잃은 여행객에 숙소 제공
조지아서 마주한 풍경에 마음 빼앗겨

최정환 시민기자 webmaster@idomin.com 2018년 09월 21일 금요일

러시아 부됴놉스크에 도착했을 땐 밤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다. 볼고그라드에서 전쟁박물관을 관람하고 오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나는 되도록이면 밤늦은 시간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아들을 뒤에 태우고 여행을 하기 때문이거니와 도로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서 운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야간 운행은 이번 여행을 통틀어 오늘이 세 번째였다. 맨 처음은 몽골 국경을 넘어 울란바토르로 갈 때였고, 두 번째는 카자흐스탄 내륙을 통과할 때 가도 가도 주변에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던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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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있는 조지아의 아름다운 풍경.

미리 부됴놉스크에 잘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보고 왔지만 막상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주위를 빙빙 둘러봐도 불도 다 꺼진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입한 핸드폰 유심의 기간까지 만료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숙소를 검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여태까지 별 어려움 없이 여행했던 걸 고마워하고 다른 한편으론 처음으로 느껴본 좌절감과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때 어둠 속 어디선가 오토바이 3대가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있는 조지아의 아름다운 풍경.

◇곤경에 빠진 우리를 구해준 친구

그들은 짐을 가득 실은 우리 오토바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따라 왔다고 했다. 숙소 찾느라 천천히 도시를 가는 우리를 보고 따라 왔나 보다. 우리가 한국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자 더욱 믿기 힘들어 했다. 숙소를 잡을 수 없었던 우리는 그들을 따라 그들의 아지트인 오토바이 창고로 갔다. 작은 창고 안 한쪽 구석에는 소파가 있었다. 지훈이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그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자를 대하는 러시아 바이커들의 방식은 참으로 놀라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처럼 치타에서처럼, 알타이에서처럼 항상 변함없이 아주 오랜 친구처럼 대해준다. 새벽을 지나고 아침이 될 때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중 '디마'라는 20대 후반의 젊은 친구는 이른 새벽 갈 곳이 없는 우리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했다. 혼자 사는 집이라 넓진 않았지만 모자란 잠을 편히 잘 수 있어서 무척 고마웠다. 오전에 우리가 잠깐 자는 동안 디마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 다녀왔다. 그는 자동차 판매 사원이라고 했다. 회사를 다녀온 디마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피자 가게를 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피자였다. 지훈이가 무척 좋아했다. 맛있게 먹고 다시 오토바이 창고로 가니 어젯밤에 만났던 그들이 다시 모였다. 또 우리는 갈 길을 가야 했기에 그들이 앞장서고 우리는 뒤를 따라 도시 밖까지 배웅을 받았다. 도시 밖 넓은 공터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한 명 한 명 포옹을 했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한밤중에 갈 곳이 없던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디마', '샤샤', '미샤' 그들에게 한 번 더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 매번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지훈이도 많은 공부가 되었으리라. 나는 디마에게 다음에 혹시나 한국에 오게 되면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지아 국경을 향해 남쪽으로 달렸다.

▲ 깊은 밤 잠잘 곳을 찾지 못한 우리에게 흔쾌히 숙소를 제공해준 디마 샤샤 미샤.

◇유럽 최고봉은 조지아 엘브루산

조지아 국경으로 가는 길에는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를 볼 수 있었다. 체첸은 러시아의 지방공화국이다. 많이 들어봤던 체첸사태는 소련이 해체될 당시 체첸공화국이 독립을 하려고 했지만 기름이 나오는 유전지대가 많아 러시아가 이를 반대했다. 이 때문에 2번이나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1차 전쟁에서는 러시아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가 절치부심 끝에 다시 체첸공화국을 공격해서 분리 독립을 막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같은 이유로 독일의 히틀러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에서 전투를 벌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의 다른 곳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경찰, 군인들이 서 있는 검문소가 많았다.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현재 러시아 사람들은 이 지역을 "평온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로즈니를 지나 아래로 좀 더 내려가자 조지아 국경이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향하는 차량이 엄청 길게 줄지어 섰다. 2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 조지아에 입국했다.

조지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흔히 알프스산맥의 몽블랑(4810m)을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이쪽 코카서스산맥의 엘브루산(5642m)이 최고 높다. 조지아가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어 '유럽이다, 아니다'로 많은 논란을 빚어왔기 때문에 혼동이 있었지만 사실 조지아는 동유럽에 속한다고 한다.

험준한 산맥들 사이로 아름다운 길이 이어졌다. 국경 근처에 있는 스키장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숙소를 나섰다. 가는 길에 인근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에 잠시 들렀다. 미로 같은 성벽을 올라가 망루에서 내려다본 호수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점심때가 돼서야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유리가 덮여 있어 거대한 온실같이 느껴졌다. 40도가 넘는 고온에 우리는 기진맥진했다. 너무 더워 도시 관광은 고사하고 그늘 밑을 찾기도 힘들었다. 결국 지훈이와 합심해 바다를 찾아 가기로 했다.

'트빌리시'에서 서쪽을 향해 달렸다. 해 질 무렵 흑해의 도시 '바투미'에 닿았다. 바닷가 바로 앞에 숙소를 잡은 후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바닷물보다 조금 덜 짠 듯했다. 이 물은 피부에 좋다고 했다. 특히 아토피를 진정시켜 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바투미'에서 40㎞를 더 가면 터키 국경이다. 이제 터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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