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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17) 진주 망경동

골목골목마다 만난 '카랑한' 진주정신
야시골·섭천 찾아간 골목…오후 2시 '낮술'에 스며든 애환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8년 11월 07일 수요일

진주시에 망경동이라는 행정명칭은 이제 없어졌다. 법정동으로 이름만 남았다.

인근 강남동과 주약동, 칠암동과 함께 '천전동'이라는 행정동으로 통합됐다.

통합이라는 게 참 묘하다. 효율을 따져 그렇게 하지만, 옛 이름이 사라진다. 마치 고향동네가 없어진 듯한 상실감도 준다.

하기야 '서울을 바라보는 쪽'이라는 뜻의 망경동(望京洞)이라는 이름에 가리워진 이름도 있었겠지….

망경동 안쪽, 망진산 아래에 자리잡은 골짝 동네를 예전에는 '야시골'이라 했다.

'섭천'도 망진산 기슭을 일렀다.

야시골의 범위에 대해서는 주민들 말이 달랐다.

"망진산 기슭 골짝이었다"는 좁은 범위부터 "망경동부터 옛날 진주역이 있던 주약동까지 포함됐다"는 넓은 이야기까지 했다.

진주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는 "섭천 소가 웃는다"는 말의 배경이기도 하다. 황당하기 그지없을 때 이 말을 쓴다.

10년 전 기사에는 이렇게 썼다.

"주민들은 섭천의 경계를 현재 천수교와 진주역을 연결하는 4차선 도로 정도로 넓게 보았다. 망경 한보아파트 아래쪽에 작은 못이 하나, 망경초등학교 자리에 또 다른 못이 하나 있었고, 그 사잇길이 섭천 진입로였다."

어쨌든, 10년 만에 다시 찾은 오늘 골목은 옛날 야시골이고, 섭천이었던 망경동 골목이다.

▲ 망경동 망진산길 골목 담벼락엔 이불 하나 걸렸을 법하다.

◇낮술

위치도 물을 겸, 이 일대에서 잘 알려진 강남동 '육거리곰탕'에서 산책을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만 수십 년을 살았다는 식당 아줌마에게도 섭천이나 야시골은 낯선 모양이다.

"잘 모르겠는데예?" 해놓고는 "그런 걸 와 물어보는데예?" 했다.

끝이 아니었다. 아줌마는 이래저래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더니 "저 우에 주민센터서 물어보면 되겠네예!" 하며 곰탕 손님에게 끝까지 성의를 보였다.

주민센터의 이름은 '천전동주민센터'다. 거기서부터 망경초교까지 걸었고, 그 위쪽 '망진산길'부터 경사가 급해졌다.

꼬불꼬불, 미로같은 골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볕 좋은 골목 담장 위에는 이불 한 둘 걸쳐있을 법하다.

골목골목마다, 이집저집 신기한 게 많다.

옛 돌담 흔적도 있고, 현관마다 화초를 기르기도 했다.

집집마다 현관 장식도 다양했다.

사람들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마침 동네슈퍼 앞이 시끌벅적했다. 그때 시각이 오후 2시 정도.

50∼60대 아저씨 대여섯이 낮술 중이다.

생각보다 말 걸기가 어려웠다. 우선,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캔사이다 하나 사서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20분이 지나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에 일자리, 인력, 일당 이야기까지….

주제는 좁혀졌고, 목소리는 높아졌다.

나중에는 '진주 장대동 술집'까지, 술로 시작한 이야기가 술로 끝났다.

평상 주변에 술병도 제법 늘어졌다.

▲ 망진산 봉수대에서 유장한 남강구비를 전망했다. /이일균 기자

◇망진산 봉수대

오히려 한 분이 나에게 말을 '툭' 걸었다.

"와 거 서 있소?"

"아 예. 이 길이 망진산 가늘 길임미꺼?"

"맞소. 쭈욱 올라가소."

...

"와 안 가요?"

"아, 이거 마저 마시고 갈려고…."

...

"행님, 인자 술 됐능가베. 살살 썽질을 내는 거 봉께"

"내가 뭔 썽질을 내?"

...

낮술에는 요령이 있다.

▲ 망진산길 골목 구석구석마다 필요한 게 놓였다.

대충 술이 되고, 이야기가 시빗조로 흐르면 한두 명씩 일어선다.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골목 아래로 걸어가는 아저씨 걸음거리가 '갈 지(之) 자'다.

동네에서부터 20분 넘게 망진산길을 올랐다. 10여년 만에 다시 망진산 봉수대를 찾았다.

진주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남강 건너편 진주성과 구 도심, 강 이쪽 통합된 천전동 일대.

단연 압권은 남강 구비를 보는 것이다.

'유장(悠長)하다'는 말뜻 그대로 '길고 오랜' 강물의 역사를 음미할 수 있다.

평일 낮시각, 사람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말 상대를 찾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망진산봉수대 안내판을 주시했다.

"고령가야와 삼국시대 때의 백제에서도 이곳 봉화의 흔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정비된 전국 5개 직봉노선 중 동래 다대포진과 한양 목멱산(남산)을 연결하는 제2노선의 보조노선으로, 남해 금산-사천 안점-명석 광제산을 연결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우리나라 산봉우리마다/ 봉홧불 활활 타올랐네… 진주사람 카랑한 정신으로 감연히 일어섰네/ 걸인들도 기생들도 앞다투어 나섰네"

"망진산 봉수대는 1996년 6월에 다시 세워졌다. '진주문화사랑모임'이 주도했다. … 리영달, 김장하, 박노정…, 이순갑 추진위원장."

진주 사람들은 진주정신을 상징하는 수사로 '카랑한'이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봉수대 중건 당시 <진주신문> 대표였던 고 박노정 선생도 자주 그랬다.

"진주정신은 카랑말짱한 정신이지!" 

▲ 2006년 10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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