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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20) 이탈리아로 들어가다

가는 곳마다 따스하게 우릴 맞이한 사람들
폼페이·콜로세움 등 고대유적 둘러봐
낯선 여행객 위해 친절 베푼 현지인들
스위스 국경 넘자 '산악 비경'기다려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12월 04일 화요일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 좁은 도로 옆으로 난 절벽에는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달력에 나오는 풍경 사진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말피 해안을 지나 소렌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로 향했다.

고대 로마 도시인 폼페이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폼페이 바로 옆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있다. 2000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하룻밤 새 4m의 화산재가 쌓였다고 한다. 폼페이는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묻혀 버렸고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사라진 고대도시를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 폼페이 유적지를 배경으로.

◇폼페이와 로마

처음 발굴 당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미리 대피한 줄 알았는데 유적들 사이로 생긴 빈 공간을 이상히 여기고, 거기에다 석고를 부어넣었더니 놀랍게도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를 막고 앉아 있는 사람,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놀란 강아지. 그날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폼페이를 둘러보고 다시 바닷가 길을 따라 로마로 향했다.

▲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로마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콜로세움(원형경기장)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신기해했다. '얼마나 여행을 한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 '힘들지는 않은지'를 물었다. 로마 시민,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경찰관들과 테러에 대비해 나와 있는 군인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덕분에 좋은 일도 있었다. 대개 유명 관광지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힘들다. 그런데 경찰관들이 주차금지구역이라도 잠시 바이크를 세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유명 관광지이기에 좀도둑이 많다고 들어 걱정이 되었지만 경찰이 우리 바이크를 지키고 있으니 안심이 됐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바이크를 둘러싼 채 사진을 계속 찍어대니 도둑이 근처에 오려고 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 트레비 분수에서.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에도 들렀다.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오래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유명한 장소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로마를 둘러보고 다시 피사로 향했다. 피사의 두오모 광장에는 '피사의 사탑'이 세워져 있었다. 기울어진 것도 신기했지만 그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200년이 넘은 집과 노부부

제노바와 밀라노를 거쳐 계속 북쪽 스위스를 향해 출발했다. 일단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이탈리아-스위스 국경 근처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들렀다. 장을 보고 나오는데 한 할머니가 우리 오토바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오토바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토바이 옆에 붙은 지도를 보면서 이렇게 여행한 이 사람들은 누굴까 생각했답니다. 바로 옆에 저희 집이 있는데 같이 가면 좋겠어요. 집에서 기다리는 할아버지도 아마도 반겨 주실 거예요." 마트에서 나와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2층으로 지어진 할머니 댁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집 같아 보였는데 현관문 위에 숫자 '1780'이 적혀 있었다.

"할머니 이 숫자에는 무슨 뜻이 있어요?" 숫자가 궁금해 지훈이가 물어봤다.

"1780년에 이 집이 지어졌어요, 나도 이 집에서 태어나고 나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이 집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와 할머니 집 지은 지가 200년이 넘었네요."

"옆집들은 오래된 헌집을 부수고 다시 새로 지었는데 나는 그러기 싫어요. 어릴 때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라 선뜻 부수지를 못하겠어요."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집안 구경을 시켜 주었다. 1층 한쪽 옆에 피아노와 벽난로가 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집 뒤로 난 계단에 오르니 집 옆에 아주 오래된 성당이 있었고 계단 제일 높은 곳에 테라스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맛있는 차와 음식을 내어 주었다. 감사했다.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는데 나는 어르신들이 불편하실 것 같아 그냥 스위스에 약속이 있다며 가야 된다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할머니께서 아들 지훈이 손에 작은 봉지를 쥐여 주셨다. 봉지 안에는 과자와 땅콩 그리고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 친절한 '1780' 할머니집 앞에서.

◇그림젤패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데 유럽연합에 가입된 국가들은 따로 국경이 없었다. 큰 트럭들만 세관 검사를 받느라 조금씩 줄지어 서 있었고, 일반 자동차와 바이크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스위스 국경을 넘자 그림 같은 산악지대가 펼쳐졌다. 산악지대지만 도로가 잘 정비돼 있었다. 신기했던 건 모든 도로 옆에 철도가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인 나라답게 교통시설이 정말 잘돼 있었다. 어느 도시든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도록 철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림젤' 패스에 도착했다. '패스'는 알프스 산맥의 고개를 넘어가는 곳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그림젤, 수스텐, 푸르카, 스텔비오 패스가 있다.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올라가는 재미가 있어서다.

그림젤 패스 정상에 도착했을 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쌓일 정도는 아니어서 운행을 하는 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굉장히 추웠다. 고개 정상에 있는 그림젤 산장에 들어서니 이미 바이크를 타고 온 많은 아저씨들이 추위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여기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가까이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출발해 러시아, 몽골, 파미르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함께 박수를 크게 쳐 주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들은 지훈이에게 '러키보이'라고 했다. 그림젤 패스 산장에서 몸을 녹이고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글·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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