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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여행] (19) 남해군 서면…숨쉬는 역사적 공간

팔작지붕·대청마루 간직한 주민의 벗
도예공방으로 재탄생한 기억의 장소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9년 02월 01일 금요일

근대문화유산은 문화재란 프레임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처럼 과거의 원형을 보존하기보다 지금도 살아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난 28일 남해군 서면을 찾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광지로서 남해군을 본다면 서면은 잘 찾진 않는 곳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풍경이 호젓하고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이곳에 각각 멋지게 활용되고 있는 근대건축물이 있죠. 설 연휴 고향을 찾는 걸음에 마을 역사를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1950년대 전국 최고 한옥 마을회관

서호마을 입구 표지석을 지나면 정면으로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는 서호마을회관이 나옵니다. 이렇게 근사한 마을회관은 전국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본은 단정한 한옥 건물이고요. 근래에 깔끔하게 수리를 하면서 마치 기념관 같은 공간이 완성됐습니다.

정면에 큰 건물이 있고 양쪽으로 날개처럼 부속 건물이 달렸습니다. 정면에 있는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입니다. 나머지는 최근에 증축한 거고요.

정면 건물은 정면이 5칸, 측면이 3칸으로 팔작지붕을 한 전통 한옥입니다. 5칸 중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고요, 오른쪽 한 칸은 노인정으로, 왼쪽 한 칸은 원래 이장 집무실이었는데 지금은 창고 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대청마루에 유리문이 달린 게 1970년대고요.

▲ 지금도 마을회관과 노인정으로 사용 중인 근대문화유산 남해 서호마을회관(호운각). /이서후 기자

▲ 근대문화유산 남해 서호마을회관(호운각). /이서후 기자
▲ 전통 한옥 양식이 드러난 대청마루 천정./이서후 기자
이 건물 이름이 호운각(湖雲閣)입니다. 지금도 마을회관과 노인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들어가 보니 방에 어르신 6분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계십니다. 건물이 준공된 게 1958년 3월입니다. 여쭤보니 어르신들 대부분 당시 건물 공사에 참여하셨다고 하네요. 처음부터 마을회관으로 지은 거랍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간단한 건물을 지어 쓴 것과 달리 서호마을은 처음부터 야무지게 번듯한 한옥으로 지었다고 하네요. 회관 앞에 세워진 '호운각 중건기'에 당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지금 회관 자리에 목조 함석집을 지어 사용해 오던 중 1955년 초에 김일두 옹의 강력한 제의로 동민들이 일치단결하여 그해 가을에 마을 주민들의 산지에서 벌목하여, 이듬해 1956년 봄부터 오로지 동민들의 기술과 노력으로 원기동 목재 기와집을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다."

경남도 자료를 보면 이승만 정권 시절 마을회관으로서는 전국 최고 규모 한옥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네요. 어르신들 말씀대로 대청마루 천장을 보니 얼기설기 멋들어진 한옥 구조가 제대로 드러나 있네요.

2010년 만든 부속건물도 재밌습니다. 왼쪽에 있는 게 '이장방'(실제 이렇게 현판이 달렸어요.)으로 이장 사무실이고요, 오른쪽에 있는 것이 '동네방'으로 사랑방 노릇을 하는 곳입니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취송정이란 비각도 최근에 지은 듯하지만 굉장히 독특합니다. 서호마을 주민들의 감각이 여러 곳에서 빛이 나네요.

◇버려진 일제강점기 돌창고의 대변신

서호마을 바로 옆이 대정마을입니다. 대정마을 도롯가에 커다란 돌창고가 하나 있죠. 이곳이 요즘 제법 유명해진 남해 돌창고 프로젝트 건물 중 한 곳입니다. 쓰지 않는 돌창고를 고쳐 감각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거죠. 처음 생긴 게 남해 시문마을에 있는 돌창고로 갤러리와 카페로 쓰고요. 대정마을 돌창고는 최근에 수리가 끝나 도예공방과 도예 소품 가게가 들어선 두 번째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 돌창고가 1920년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문화유산입니다.

남해에 돌창고가 모두 30개 정도 되는데요. 대부분은 1960년대 농협이 지은 겁니다. 사실 대정 돌창고도 사용승인은 1960년대로 되어 있지만 건물 자체는 1920년부터 있었다고 하네요.

이곳에 둥지를 튼 김영호 도예가의 말로는 아예 태생적으로 다른 돌창고라고 합니다. 시공방법 이야기인데, 예컨대 내부 마감 방식이나 골조를 붙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답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찾다니요? 누가 봐도 도롯가에 잘 보이게 서 있었는데요?"

▲ 1920년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정마을 돌창고 외부 모습. /이서후 기자

▲ 1920년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정마을 돌창고를 멋진 문화공간으로 바꾼 모습. /이서후 기자
▲ 1920년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정마을 돌창고를 멋진 문화공간으로 바꾼 모습. /이서후 기자
맞습니다. 저도 사실 여러 번 봤음 직한 건물입니다. 이런 건물을 활용할 생각을 한 그 안목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요. 건물을 사들이기도 쉽지 않았답니다. 원래 농협 건물이었는데 구제금융 시절에 민간에 판 것을 다시 사들였다는군요. 이미 100년이나 된 건물입니다. 이런 곳을 문화공간으로 꾸미려면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건축가의 전문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습니다. 공간 절반을 잘라 도예공방을 두고 나머지는 복층으로 위층은 조그만 가게 형태의 접대공간을, 아래층은 화장실을 넣었습니다.

가운데에 지붕까지 뚫린 계단을 두고 햇빛과 공기가 드나들도록 했고요. 계단 끝은 지붕 위로 솟아 전망대 노릇을 합니다. 물론 전체적인 건물의 틀 그러니까 벽돌벽 내외부와 천장 목재 구조물은 그대로 남겼습니다. 이게 바로 이 건물의 정체성이니까요.

서호마을회관과 대정마을 돌창고. 이제 두 건물의 공통점을 아시겠죠?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둘 다 '지금도 살아 있는 건물'이란 사실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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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