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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그래도 우리는>

날카로운 문장 시대를 관통하다
마산고 교사·문학평론가 저자
1969~1979년 쓴 칼럼집 재발간
동·서양 철학 넘나드는 인용구
예술·교육 향한 통찰력 돋보여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9년 03월 15일 금요일

▲ 정재관 선생 생전 모습. 그는 생활인으로서 특유의 보수적·현실적 관점으로 글을 써냈다. 마산고 교사 시절 그의 제자들은 그를 '호랑이 선생님'으로 회상한다. /〈그래도 우리는〉 발췌
40년 전 글들이지만 나름 또 읽을만한 구석이 많았다. 올 초 발행된 문학평론가 정재관(1934~1985)의 칼럼집 <그래도 우리는>(도서출판 경남) 이야기다. 원래 1979년에 나온 책인데, 마산고 교사 시절 제자들이 '정재관 선생 문집 간행위원회'를 꾸린 후 다시 펴냈다. 이 책과 함께 평론집 <문학과 언어 그리고 사상>도 발간했다.

<그래도 우리는>은 1969~1979년 사이 그가 논설위원으로 있던 <경남매일>(지금 <경남신문> 전신)에 쓴 칼럼을 모은 것이다. 글마다 서양철학에서 동양고전까지 다양한 인용구가 적절히 들어 있는데, 박학다식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예컨대 '해학과 파서'라는 글을 보면 20세기 최고 신학자로 불리는 칼 바르트에서 시작해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로 이어진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 자공의 말을 인용한 다음, 다시 독일 철학자 헤겔의 개념을 가져오고,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벤 존슨의 책에서 인용구를 뽑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입체파 시인 막스 자코브이 나오고 윈스턴 처칠과 유태인 이야기, 중국인들의 풍자까지 곁들였다. 인터넷 검색이란 게 없던 시절이니 평소 독서량이 엄청났을 것이다. 또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면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으리라.

이런 경향은 이미 1960년대 그가 마산고 교사로 있던 시절부터 유명했나 보다.

"동서양 철학이 난무하는 선생님의 문학 수업은 난해하면서도 박진감 있게 전개되어 신체 발육과 지적 호기심으로 질풍노도의 삶을 살던 우리에게 자의식을 키우고, 본래면목을 정립하는 데 지남이 되었다." (선생 제자 김복근 시인의 편집사 중에서)

그의 글을 읽고 보니 특히 교육과 예술과 관련해서는 지금 봐도 멋진 생각들이 많다.

"인간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드는 작품이어야 한다. 인간은 그 스스로가 바라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만드는 존재이며, 또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략) 태어나기 전까지는 신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태어난 뒤에는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구석으로 밀린 교육' 중에서)

"화가의 눈은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 (중략) 예술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기에 이 현실의 통념적인 세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미술전시회와 보따리장수' 중에서)

하지만, 그의 글은 때로 너무 모범적으로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으로 치면 '꼰대' 소릴 들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또 그 시대에 맞는 생각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생활인으로서 보수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그의 제자들이 '무서운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것도 언뜻 이해가 된다.

"돈은 벌고 볼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이 무시할 수 없기는 하지만, 우리들만은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돈은 수단이지, 목적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원칙을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하여 이 말은 돈을 무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인간다운 면을 찾기 위해서도 돈은 필요하다." ('돈은 벌고 볼 일이다' 중에서)

"걸핏하면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인격적 존재'로 대하라든지, 애정으로써 감싸 주어야 한다는 등의 부처님 아닌 부처님 같은 이야기만 늘어 놓기 일쑤인데,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걸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중략) 들어야 할 매도 안 들면 그것은 애정이 아닌 것이다." ('청소년 비행과 애정의 의미' 중에서)

그는 1970년대 말 유신 정권의 눈 밖에 났고, 급기야 1980년 신군부 치하에서는 논설위원과 교수직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7·4성명은 박 대통령의 지혜롭고 용기 있는 혜안에 의해서 한민족의 밤에 불을 밝힐 것이다. 형제가 남북으로 서로 맞서 죽이고 죽고 하는 암흑의 장벽을 향해 던진 빛의 화살과 같은 것이다." ('코리안 나이트' 중에서)

"한편에서는 건설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어 북괴의 침략을 때려 부수어야 하겠다." ('견마지심' 중에서)

이런 글을 볼 때 그가 반정부 인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유신 정권과 신군부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당시 정권의 행태가 지나치게 비이성적이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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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