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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동네 사람]김재길 씨

높이 날아오를 때 더 겸손해져야죠
전업 시인 꿈꿨던 20대 청춘
꿈 잠시 접고 취업 전선 돌파
"뽐내기보단 평범한 일상 만족"

김연수 기자 ysu@idomin.com 2019년 05월 10일 금요일

김재길 씨는 군복을 입은 채 2013년 1월 시상대에 올랐다. 그가 쓴 시조 '극야의 새벽'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고작 스물한 살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청년 김재길 씨를 만난 건 2015년 9월이었다. 그는 당시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복학생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언젠가는 나고 자란 고향 통영에서 이름난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긋한 말투엔 당당함을 품고 있었다.

청년취업난 속에서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란 자조적인 말이 나도는 요즘 그는 전업 작가가 됐을까.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이십 대 끝자락에 선 그를 다시 만났다.

▲ 7일 경남대 캠퍼스에서 김재길 씨가 소설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다. 그는 "이건 비밀인데 요새는 소설이랑 드라마 시나리오를 즐겨읽어요"라고 말했다. /김연수 기자

-시간이 꽤 흘렀네요. 학교는 졸업하셨죠?

"네. 2015년 인터뷰했을 때 마지막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죠. 작년 5월부터 모교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생 때부터 모교에 애정이 많았어요. 제가 처음 시조를 배운 곳이니까요."

-시조를 계속 쓸 줄 알았는데요?

"물론 계속 쓰죠. 시는 제게 일기 같은 거예요. 일상을 풀어쓰고 그걸 다시 시조형식으로 다듬는 게 제겐 익숙해요. 다만 직업으로서 꿈은 잠시 접어뒀어요."

-앞선 인터뷰 때 "어쩌면 작가의 삶을 너무 적나라하게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는데.

"스물한 살에 등단해서 선배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시인을 직업으로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활동하면서 제 문학적 지식이 바닥이라는 걸 몸소 느꼈어요. 현실적으로 매달 5편은 원고를 쳐내야 최소 생계가 유지되는데 저는 그게 어려웠어요. 주변의 기대감만 높였을 뿐 화려함 속에 감춰진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뽐내기보다는 단단해지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결국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네요?

"네. 남들처럼 스펙 쌓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죠. 사실 지금도 자격증 같은 건 없어요. KBS 한국어 자격증이나 한국사 자격증은 따고 싶어요."

-토익 시험도 쳐봤나요?

"처음 시험 쳤을 때 제 발 사이즈보다 점수가 낮았어요.(990점 만점)"

-스무 살 김재길을 돌아본다면?

"국문과에 딱 입학했는데 말 그대로 막연했어요. 열심히 달려나가고 싶은데 목적지가 없었죠."

-인문학을 비롯해 기초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 같은데요? 진로가 명확하지 않으니까.

"맞아요. 그래서 제가 찾은 게 창작아카데미였고요. 거기서 시조를 만나서 푹 빠졌어요. 그 과정에서 겪게 된 크고 작은 성공이 저를 성장시켰죠. 20대를 관통한 주제는 사랑이었어요. 항상 그 떨림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 사랑을 주제로 한 시 여정 1막은 끝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시를 쓰나요?

"집중하는 주제는 없어요. 소소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이전에 사용하던 표현 방식을 모조리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어요. 30대엔 시집 한 권 내고 싶어요."

-경남도민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아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경남도민일보는 그동안 다른 신문이 주목하지 않는 사회 이면을 밝혀오는 데 힘썼다고 생각해요. 경남도민일보 사시가 '약한 자의 힘'인 만큼 지역주민 인터뷰가 다양하게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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