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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사복군인 "학생에 평생 미안"

■ '편의대'활동 첫 양심선언
"경남대서 연행 경찰 도와"
기념사업회 만날 의향 밝혀
연장된 진상조사 새 국면

김희곤 기자 hgon@idomin.com 2019년 05월 16일 목요일

1979년 부마항쟁 당시 군인이 사복을 입고 민간인 사이에 침투한 '편의대'가 있었다는 양심 선언이 나왔다. 이전까지 부마항쟁과 관련해 편의대에 대한 증언은 처음이다. 한 부마항쟁 진상규명위원은 "진상조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15일 오전 부산마산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인근에서 한 달여간 머물면서 계엄군으로 활동했다는 홍성택(61) 씨와 인터뷰를 했다. 홍 씨는 자신을 "박정희 정권 말기, 1979년 부마항쟁에서 편의대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78년 8월에 입대해 특전사로 차출됐고 공수훈련을 받아 부마항쟁(1979년)·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으며 1980년 5월 전역했다.

▲ 홍성택 씨가 부마항쟁 당시 특전사에 근무한 증거물로 CBS에 보낸 재직 기념 앨범. /CBS
▲ 홍성택 씨가 부마항쟁 당시 특전사에 근무한 증거물로 CBS에 보낸 공수교육 휘장증. /CBS

◇"편의대는 프락치" = 홍성택 씨는 서울 근교에 부대가 있었는데 부마항쟁이 일자 계엄군으로 부산에 갔다 마산으로 이동해 시위대를 진압했다고 했다. 마산에 도착한 홍 씨는 '사복을 입고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 집회에 참여할 학생을 색출했다고 했다. 홍 씨는 편의대를 '프락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홍 씨는 "당시 부대에서 '사복을 입고 나가서 학생들에게 11월 3일 데모를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봐라'라고 했다. 다방에 가서 몇몇 학생들에게 '나는 서울에서 온 대학생인데 데모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 데모를 하느냐?'라고 물어보고, 맞다 거나 알고 있다고 답하면 오른손을 들어 형사를 불렀다. 그러면 형사가 그들을 데리고 갔다"고 증언했다. 또 "(학생들을) 여기저기서 계속 싣고 가는 걸 보면 그 일을 저 혼자 했던 건 아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안)'에는 1979년 10월 19일 박정희가 육군본부에 '공수특전여단 1개 대대를 마산으로 이동시켜 39사단장을 지원하라'고 지시했고, 20일 오전 12시 35분 1공수특전여단 2대대 병력 235명이 마산에 도착해 39사단에 배속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5공수특전여단 병력 1481명이 마산에서 무력시위에 나선 기록도 있다.

홍 씨는 인터뷰에서 부마항쟁에 대해 "그냥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막 후드려쳤다. 그게 지금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왜 내가 그 사람들을 때려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안 때리면 내가 맞으니까, 당시는 그 분들 때문에 고생을 하니까 아주 미웠고 어떻게 해서든 이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그때는 그게 애국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평생토록 계속 미안해하면서 살아왔다"며 사과했다.

홍 씨는 최근 주한미군 정보원 출신 김용장 씨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증언을 듣고 CBS에 메시지를 보냈고, 인터뷰를 했다. 김용장 씨는 앞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편의대가 있었고, 사복을 입은 군인이 시민 사이에 침투해 안 좋은 행동을 유발했다"고 했다.

▲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마산에서 이동 중인 공수부대. /경남도민일보 DB

◇"새로운 증언" = 1979년 10월 18~19일 군과 경찰은 마산에서 부마항쟁과 관련해 모두 505명을 연행해 59명을 구속하고, 125명을 즉결심판에 넘겼으며 321명을 훈방했다.

허진수 부마민주항쟁진상 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위원은 "홍 씨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 이모 씨가 생각났다. 증언집에 이 씨의 진술 기록은 없지만, 이 씨가 당시 11월 6일 데모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복을 입은 공수부대 3명에 의해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우선 홍 씨와 먼저 연락이 닿으면 구체적인 날짜나 당시 상황 전개 등을 인터뷰할 계획이며, 이 씨에게도 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 위원은 "홍 씨의 인터뷰는 사복을 입은 군인이 부마항쟁에 개입했다는 아주 중요한 증언이다. 진상조사위가 새로운 사실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위원이 말한 이모 씨는 1979년 10월 22일 체포돼 39일간 구속됐다. 이 씨는 그해 11월 28일 공소 기각 판결을 받고 이튿날 석방됐다. 진상보고서에는 그해 "10월 19일 새벽 군인 1명과 경찰 2명이 한 조로 골목골목을 돌아디니며 청년을 무조건 연행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복 군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연구원은 "부마항쟁기념사업회에서 세 번째 증언집 작업을 시작하는데, 양심선언을 한 홍 씨의 증언도 기록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갑순 부마항쟁기념사업회장은 "부마항쟁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들 사이에 '프락치'가 있다는 말이 계속 나돌았었다"며 "홍 씨의 양심선언은 고맙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초청해서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홍 씨는 15일 <경남도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일등병으로서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쫓아 다녔을 뿐이어서 깊은 내역까지는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마산을 찾아 기념사업회 등과 만날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유신체제를 철폐하고자 전개된 민주항쟁이다. 2014년 10월부터 진상규명 조사가 진행됐지만 부실 지적이 이어졌고, 지난해 7월 수정·재조사를 조건으로 보고서를 채택했다. 관련 법 개정으로 진상규명위 조사 기한이 올해 12월 23일까지로 연장돼 새로운 증언을 토대로 보고서를 수정할 수 있다. 부마항쟁은 올해 4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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